우리 ‘아리랑’과 비슷한 쿠바의 노래가 ‘관타나메라’다.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 등 재즈 악단의 공연으로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관타나메라’의 뜻은 ‘관타나모의 시골아가씨’. 19세기 쿠바의 독립 영웅인 호세 마르티의 ‘소박한 노래’라는 시집에서 가사를 따오고 전통 민요곡조인 이 노래는 지금도 ‘제 2의 국가(國歌)’로 불릴 정도다. 관타나모 출신인 사람의 가난하고 순박한 고향 마을과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을 담고 있다.
관타나모는 수도 아바나에서 동남쪽으로 900여㎞ 떨어진 시골이다. 카리브 해에 면한 관타나모 만(灣) 일대를 의미하며 사탕수수 경작이 주된 산업이다. 지난 1498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여기에 상륙해 ‘스페인령’으로 선포하며 사실상 쿠바의 식민 역사는 시작됐다. 400년 스페인의 지배는 1898년 아바나 항에 정박 중이던 미국 군함 메인호가 침몰하는 사건으로 큰 변화를 겪는다. 미국은 이를 계기로 스페인에 선전포고를 하고 전쟁에 돌입한다. 3개월 만에 두 손을 든 스페인은 파리 강화조약에서 쿠바뿐 아니라 필리핀과 괌 등을 미국에 넘긴다. 이후 쿠바는 1902년에 독립하지만 실질적 지배권이 있던 미국은 그 다음해 관타나모 해안의 요충 지역을 매년 금화 2,000개를 주는 조건으로 영구 조차한다. 현재의 관타나모 미군 기지다.
둘레가 27㎞에 달하는 경계 지역은 1970∼1980년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지뢰 매설과 선인장·철조망으로 철저히 격리된다. 1962년 미소 간 미사일 위기도 관타나모 철수를 미국이 거부한 데 대해 피델 카스트로가 소련의 미사일 기지 건설을 허용하면서 촉발됐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8년 전에 공약한 관타나모 기지 수용소의 폐쇄 계획이 결국 실패로 끝났다고 한다. 후임인 도널드 트럼프는 오히려 전임자가 문제 삼았던 ‘테러범 수용소’로 활용도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미국과 쿠바 사이의 화해 분위기가 점차 무르익어가고 있으나 ‘관타나메라’의 소박한 평화는 아직 멀었는가 보다. /온종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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