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 유성구에 위치한 한국타이어 ‘테크노돔’의 첫인상은 산을 등지고 호수 위에 내려앉은 우주선 같은 느낌이다. 건물 지붕은 흡사 공상과학(SF) 영화 속 접시 비행선 같고 그 아래 앙상한 기둥은 건물 전체적인 중량감과 대조적으로 임시 지지대 같은 느낌을 줬다. 모양 좋게 내려앉았지만 곧 날아갈 우주선처럼 떠 있는 듯했고 주변 분위기를 정적으로 잡아 앉히는 수변공간은 성을 둘러싼 해자처럼 보였다. 연구시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으로 무장한 이 건물은 SF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하게 한다.
●하이테크 건축의 진수
‘계란빌딩’ 英 거킨타워·애플 사옥 설계한
건축 大家 노먼 포스터의 한국 첫 작품
한국타이어 테크노돔은 지난 1992년 지어진 대전 유성구 장동의 연구개발(R&D) 연구소를 확장 이전한 건물이다. 대지면적은 2배, 연면적은 4배 늘렸다. 공사비 2,664억원이 투입된 테크노돔은 지난해 10월 오픈했다.
테크노돔 탄생의 첫 배경은 생산량 세계 5위, 매출액 세계 7위의 글로벌 타이어 업체 위상에 걸맞게 낡고 좁아진 기존 연구소를 리뉴얼하는 것이 이유였다. 독일·중국·일본·미국 등 해외 현지 R&D센터가 지역별 수요조사 및 맞춤형 상품 개발을 맡는다면 테크노돔은 ‘센트럴 R&D연구소’로서 글로벌 기술전략을 수립하고 초일류 상품을 개발하는 주축으로 기능한다. 한국타이어는 이 연구소가 회사의 높아진 위상을 과시할 수 있는 ‘랜드마크’ 건물로 국내외 협력사와 고객사에 최첨단 기술력을 보여줄 수 있는 전시장으로 기획했다.
다각적인 검토를 통해 설계자로 선정된 곳은 영국 설계업체인 ‘포스터앤드파트너스’.
하이테크 건축의 대가로 불리는 노먼 포스터의 설계업체다. ‘계란빌딩’으로 유명한 런던의 거킨타워, ‘우주선’이라는 애칭의 애플 신사옥(애플캠퍼스2) 등을 비롯해 홍콩상하이은행 본점, 런던시청, 뉴욕 허스트빌딩 등으로 잘 알려진 건축가다. 테크노돔은 한국에서의 첫 작품이다.
● ‘원 컴퍼니’ 소통 모티브
중앙 아레나 중심으로 10개 건물들 도열
칸막이 없애고 벽면은 유리…소통 강조
건축주가 건물에 담아주기를 원했던 이미지는 ‘원 컴퍼니’와 ‘소통’이었다. 전 세계 120여개국에 판매망을 가진 글로벌 기업이지만 ‘하나의 지붕 아래 하나의 기업’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는 조형이다. 멀리서 보면 커다란 돔 천장을 가진 철근·유리 구조물이지만 내부에는 중앙광장(아레나)을 중심으로 커다란 기둥처럼 10개의 건물(필러)이 도열하는 구조다. 경영진과 기술, 첨단설비와 소비자, 협력사 등 여러 힘이 결국 한국타이어를 지탱하고 있다는 상징이다.
건물 내부는 각 시설 연결 부분과 유리면을 제외하고는 온통 흰색이다. 벽면과 기둥은 화이트 콘크리트와 비정형 곡면으로 처리된 흰색 철판으로 마감됐고 필러와 층을 구분하는 은백색 스테인리스 선이 줄눈처럼 층위를 경계 짓는다. 중앙광장을 덮는 유리 천장으로 풍부한 빛을 내부로 끌어들이고 구름다리처럼 에스컬레이터가 각 층을 연결하고 있다.
‘소통’을 강조하듯 대부분의 벽면이 유리로 처리돼 공간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인다. 연구소 특성상 입구 보안절차가 까다롭지만 일단 건물 내에 들어서면 모든 시설이 한눈에 들어오는 구조다. 사무실 역시 탁 트인 공간에 개방적으로 배치돼 있고 공동연구·회의실도 따로 칸막이가 없다. 자연스럽게 연구자들이 마주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건물 곳곳에 마련돼 있다.
● 국내 R&D 시설 최초 리드 골드등급 인증
비용 부담 감수하며 꼼꼼한 친환경 설계
까다로운 美USGBC 심사 무난히 통과
이 건물의 또 다른 특징은 국내 R&D 시설로는 처음으로 친환경건물 인증제도인 리드(LEED) 골드등급을 획득했다는 것이다. 미국 비영리단체인 푸른건물위원회(USGBC)가 주관하는 이 인증은 기획에서 준공, 사후관리까지 건축과정 전체에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고 있고 부지 선택에서 설계, 시공까지 친환경 가치를 실현하는 항목이 촘촘하게 짜여 있어 인증을 통과하기가 힘든 것으로 유명하다. 심지어 준공 후에도 10개월여 이 같은 요건들을 준수하는지 점검할 정도여서 전체 공사비가 대략 20~30% 훌쩍 초과되기 때문이다.
테크노돔은 8개 분야, 55개 항목에서 75점으로 여유 있게 골드등급 기준(60~79점)을 충족했다. 무엇보다 신경 쓴 부분은 일조량. 충분히 햇빛을 내부로 끌어들이면서도 여름과 겨울 냉난방 효율을 높이기 위해 처마 길이와 유리 천장을 적절히 조성하는 데 집중했다. 건물을 두르는 수변공간 역시 전체 온도조절에 기여한다.
또 건물 지하에서 지열을 끌어들이고 별동 기숙사 건물에는 태양열 패널을 설치해 전체 난방동력의 일부를 아꼈다. 건물 인근 조경계획을 통해 빗물 길을 유도하고 빗물을 모아 수변공간과 조경용수로 사용한다. 중수(한 번 사용한 물)는 화장실 변기용으로 재활용해 전체 사용량의 65% 이상을 절감한다.
이외에 공사단계에서도 철근·석고보드·단열재 등 주요 자재의 25%를 재활용 제품으로 대체했고 휘발성 유기화합물(소위 새집증후군 유발물질)을 배출하지 않는 자재와 접착제를 썼다. /이재유기자 0301@sedaily.com
■ 설계자 인터뷰 - 이완 존스 英 포스터앤드파트너스 설계팀장
“개방·소통의 조직문화 꿈꾸는 한국타이어 철학 담아”
“새로운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겠다는 의지에서부터 효율적인 업무공간 활용과 동선, 이를 아우르는 소통공간 등 한국타이어의 철학을 반영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물리적인 건축적 요소보다 공간 구성에 집중해 조직문화를 개방과 소통으로 이끌려는 한국타이어의 의도를 담았죠.”
한국타이어 테크노돔 설계를 주도한 영국 ‘포스터앤드파트너스’의 이완 존스(사진) 설계6팀장은 서울경제신문과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건물의 독특한 디자인보다 내부공간에 더 큰 의미를 부여했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그는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는 선을 강조한 내부 디자인은 마치 우주선의 내부에 있는 듯한 인상을 주고 곡면으로 정리된 난간과 지붕 가장자리, 아트리움 공중에 떠 있는 듯한 휴식공간들은 한국타이어가 추구하는 차세대 미학의 강렬한 표현”이라고 말했다.
존스 팀장은 영국 웨일스 웰시건축학교를 졸업하고 영국 왕립건축가협회 회원으로 지난 1990년부터 포스터앤드파트너스에서 일해왔다. 한국타이어가 포스터앤드파트너스를 선택했던 이유 중 하나는 ‘맥라렌 테크놀로지센터(MTC)’ 설계 전반에 관여한 경력이 주요했다. 이 프로젝트는 2005년 영국 왕립건축가협회(RIBA) 스털링상 관객상을 수상한 바 있다.
실제로 MTC는 건물 주변의 녹지와 수변공간, 전체 건물을 아우르는 하나의 곡면 지붕, 전반적으로 흰색·은회색으로 처리된 내부공간 등 한국타이어 테크노돔과 공통점이 많다. 하지만 그는 공간 구성에서 완전히 다른 건물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테크노돔은 중앙연구소의 성격이 강하지만 MTC는 생산시설·교육시설을 아우르는 단일 캠퍼스의 일부를 구성한다는 차이가 있다”며 “게다가 테크노돔이 열린 소통과 협업을 강조했다면 MTC는 개별 부서의 집중도를 높이기 위한 은밀한 업무공간이 강조됐다”고 설명했다.
설계에 있어 가장 어려웠던 부분에 대해서는 연구·실험실의 특수성을 꼽았다. 특수한 실험기구 자체의 섬세한 요건뿐 아니라 실험과정에서의 진동이나 소음·악취 등 운영상의 문제를 반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실험실에서 요구되는 조건을 반영하기 위해 복층공간과 공조시설, 전반적인 유지·관리 등을 다양하게 고려했다”며 “실제 한국타이어의 실험과정을 면밀히 검토하고 연구자·실험물의 반입 동선, 연구 프로세스의 순서를 다이어그램으로 만들어 복잡한 공간 ‘퍼즐’을 해석해 건축 평면에 반영했다”고 말했다. /이재유기자 0301@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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