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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전략없는 '우애'와 '신뢰'의 말로

신경립 국제부 차장





지난 2009년 9월, 일본에서 자민당 시대를 종식시키며 역사적인 정권 교체에 성공한 민주당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의 외교 독트린은 ‘우애(友愛)외교’였다. 국가로서의 ‘자립’과 체제가 다른 주변국과의 ‘공생’을 핵심 원리로 내세운 우애외교는 미국과 긴밀하면서도 대등한 관계를 구축하고 과거 소홀했던 아시아 외교를 강화해 궁극적으로 동아시아 공동체를 구축하겠다는 방대하고도 야심 찬 구상이었다.

하토야마의 우애외교는 외교적 이상주의의 결정체였다. 취임 직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중일 정상회담에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에게 “동중국해는 분쟁의 바다에서 우애의 바다가 돼야 한다”고 밝힌 하토야마의 발언이 이를 상징한다. 미국에는 자존심을 세우고 한국·중국과 우호관계를 구축한다는 새로운 청사진에 일본 유권자들은 반신반의하면서도 기대감을 보였다.

하지만 이상으로 가득 찬 하토야마 외교의 말로는 처참했다. 아시아와의 외교 강화를 주장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수십 년 동안 의존해온 미국으로부터의 ‘자립’을 주장하며 중국 중시로 방향을 튼 우애외교는 ‘큰 형님’ 미국의 심기를 건드렸다. 당연한 결과였지만 하토야마 총리는 우애외교를 구상하면서 거기까지 생각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미일 관계 악화에 당혹한 하토야마 총리는 외교정책들을 뒤집기 시작하더니 이도 저도 아닌 방향으로 표류하기 시작했다. 70%대의 높은 지지율로 출발한 하토야마 총리가 9개월 만에 지지율 19%로 불명예 사임한 데는 외교 실정의 영향이 컸다.

많이 익숙한 스토리 아닌가. 2013년 출범한 박근혜 정부의 외교는 ‘신뢰외교’ ‘균형외교’라는 말로 표현됐다. 대화와 협상을 중시하고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균형을 잡겠다는 전략은 돌이켜보면 과거 하토야마의 우애외교를 연상시킨다. 내용뿐 아니라 비극적 결과까지 말이다. ‘신뢰’라는 미사여구로 포장해 무리하게 이끌어낸 일본과의 위안부 합의는 불과 1년 만에 부메랑이 돼 한국 외교의 뒤통수를 치고 있고 앞을 내다보는 철저한 전략 없이 시작한 미중 간 줄타기 외교는 결국 중국의 혹독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보복만을 남겼다. 상대가 있는 외교에서 전략 없이 이상만 추구한 하토야마의 실패를 한국은 바로 옆에서 불과 몇 년 만에 똑같이 되풀이한 셈이다.



당시 일본에서는 간 나오토 총리, 노다 요시히코 총리로 이어진 민주당 정권 내내 후유증이 이어졌다. 우애외교는 일찌감치 포기했다지만 불편해진 미일 관계와 날로 치고 올라오는 중국의 압박에 치여 일본은 끊임없이 외교적 부담을 느껴야 했다. 우애외교의 후유증은 민주당 정권 내내 이어지다가 자민당의 아베 신조 총리 집권 이후에야 간신히 전환점을 마련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불과 열흘 후면 미국에 도널드 트럼프 정권이 들어선다. 이제 세계는 미국 외교정책의 대전환과 그에 따른 동북아 정세의 급변이라는 격류에 휘말리게 된다. 이 시기에 외교전략 부재 상태가 지속된다면 한국은 일본 민주당 정권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큰 외교적 후유증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국정 공백이라는 핑계를 대며 손을 놓고 있기에 앞으로 수개월은 너무도 중요하고, 또 위험한 시기다.

신경립 국제부 차장 kls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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