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균 (사)미래지식성장포럼 정책위원
국회가 2017년 정부예산안을 통과시킨 후 지역구 출신 국회의원 대부분 연말연시에 의정활동보고서를 배포했을 것이다. 때로는 SNS도 활용했을 것이다.
그런데 여러 의정보고 문자들을 보면서 늘 느꼈던 문제를 또 느꼈다. 의정보고서에 자신의 상임위도 아닌 타 상임위 예산까지 지역구로 유치했다고 잔뜩 자랑을 늘어놓고 있다는 것이다. 다선의 중진의원이 아니면 타 상임위 예산을 끌어오기가 무척 힘들다. 대부분은 정부가 이미 계획하고 있던 사업일 경우가 많다. 그런데 국회의원들은 예산을 많이 가져올수록 지역구 유권자들이 좋아할 것이라고 믿고 이런 예산들을 찾아서 잔뜩 나열하는 것 같다.
지역구 예산 따오는 것이 국회의원 본연의 역할인가? 삼권분립의 원칙에 입각해서 본다면 국회의 기본 역할은 정부를 견제하는 것이다. 정부가 법을 어기지 못하게 하고, 세금을 함부로 징수하지 못하게 하고, 미리 국회가 책정한 예산안에 따라 집행하도록 감시하는 등의 역할을 해야 한다. 이러한 역할은 특히 정부와 공동보조를 취해야 하는 여당보다는 야당 국회의원에게 더 중요할 것이다.
그런데 여야 관계없이 모든 국회의원이 지역구 예산확보를 자랑하고 있다. 모든 국회의원들이 지역구 예산 따기 경쟁을 한다면 정부 예산에 헛바람이 들어가는 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가? 단적인 예가 있다. 애초 정부가 제출한 2017년 예산안에는 SOC(사회간접자본)사업비가 21조8,000억 원으로 작년보다 8.2% 감소한 것이었다. 그런데 국회는 정부안보다 4,000억 원이나 늘어난 22조1,000억 원을 통과시켰다. 최순실사태로 나라 전체가 정신을 못 차리는 틈을 타서 모든 의원들이 지역구 사업을 챙긴 결과이다.
국회의원 보좌관과 장관정책보좌관을 모두 겪어본 바에 따르면 정부의 예산을 제대로 파악하고 감시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정부예산 중에 500억 원이 넘는 단위사업이 수두룩하다. 그런데 그 사업의 진행상황을 알려주는 보도자료 하나 나오지 않는 경우도 많다. 담당공무원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장관도 본인의 관심사업이나 국회의원 관심사업이 아니면 일일이 챙겨보기가 힘든 지경이다. 하물며 정부 밖 국회에서는 더 어렵다.
그러므로 국회의원과 보좌진 모든 인원이 1년 내내 정부의 예산집행과정을 모니터링하고 그것의 효과를 현장의 목소리를 통해 관찰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정부가 과연 필요한 곳에 예산을 사용하는지 아니면 조직이기주의에 몰입되어 관성적으로 집행하는지 판단할 수 있다.
그럴 때에야 국회가 정부를 제대로 견제할 수 있는 것이다. 필요 없는 예산을 삭감하고, 필요한 예산은 증액하라고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제대로 된 국회의원이라면 의정활동을 보고하면서 ‘이러이러한 정부의 잘못된 예산집행을 찾아냈고, 삭감시키는 데 성공했다’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지역구 유권자들도 이런 것을 기준으로 나랏일 잘한 국회의원을 가려낼 수 있는 안목을 길러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되어야 국회의원과 정부 모두가 국민들을 위해 제대로 일하는 사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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