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정국이 지속되면서 그 영향력이 국정 전반으로 번져나가고 있다. 외교 분야에서 일본과는 소녀상 설치를 두고, 중국과는 사드 배치를 두고 갈등이 확산되고 있다. 정치 분야에서 조기 대선이 가시화되면서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리던 인물들이 하나둘씩 출정식을 벌이고 있다. 산업 분야에서는 정치 불확실성의 위기가 고조되면서 신년 사업계획을 잡지 못한다는 소식이 연신 전해지고 있다. 조류독감(AI)으로 가금류 3,000만마리가 살처분됐음에도 불구하고 불안이 완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앞으로 탄핵 일정을 못 박을 수 없는 만큼 당분간 국정이 표류하고 불확실성이 지속되면서 위기의 체감도가 늘어날 것이다.
위기 상황이 불안한 것은 위기 그 자체가 아니라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끼는 자포자기의 태도다. 위기 상황에서도 원인을 분석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대책을 세운다면 그 시간도 미래의 자산으로 소중하게 쓰일 수가 있다. 그래서 국정농단의 사태가 왜 발생했을까. 또는 국정농단의 사태를 막을 수 없었을까 라는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며 책임 소재를 가리는 데 초점을 둬야겠지만 원인과 예방에도 철저히 성찰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정치인의 권위주의적 사고, 공무원의 직업 정신, 언론의 감시 기능, 대학사회의 비판의식 등에서 원인과 예방의 방향을 찾을 수 있다. 여기서 다시 정치인·공무원·언론인·대학사회가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한 모양으로 병리와 위기를 제대로 인지하지도 못하고 비판하지도 못했을까 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가 없다. 이에 대해 우리 사회 전반에 뿌리내린 기능주의와 조작주의 사고를 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다.
기능주의는 윤리적 고려보다는 일의 결과에 초점을 맞추고 각자가 맡아야 할 몫을 작은 단위로 쪼개 능률을 극대화시키는 사고다. 조작주의는 상황을 몇 가지 상수와 변수의 관계로 분석하고 조작을 통해 불리한 요인을 유리한 요인으로 바꾸려 하는 사고를 말한다. 기능주의와 조작주의는 모두 공정한 과정보다 결과의 성취를 중시하고 진정성보다 이미지를 강조해 기대하는 욕망의 달성을 앞세운다. ‘노자’ 29장을 읽으면 세상을 기능주의와 조작주의로 접근하는 태도를 무척 경계하고 있다.
노자는 세상에서 뭔가를 얻으려고 하면 마지못해 하는 수 없이 하는 부득이(不得已)의 태도를 강조한다. 다들 내가 잘할 수 있다고 나서는 시대에 부득이의 태도는 너무나도 소극적이고 안이한 접근으로 보인다. 노자는 부득이의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천하는 신묘한 그릇(天下神器)이어서 내가 원한다고 해서 그렇게 움직이고 내가 싫어한다고 해서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다. 사태는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경우도 있지만 뒤에서 졸졸 따라오는 경우도 있고, 강하게 맞부딪치는 경우도 있고 부드럽게 미끄러지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세상은 기능주의와 조작주의처럼 몇 가지 기능과 변수로 요약될 수 없다. 그러니 천하의 움직임과 향방은 나의 지식으로 다 예측할 수도 없고 나의 경험으로 포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꼭 이렇게 해야 한다고 하면 실패하기 십상이고 이것만은 놓치지 말아야 한다며 붙잡으면 붙잡을수록 잃어버리게 된다(위자패지·爲者敗之, 집자실지·執者失之). 마지막으로 노자는 사람이 자신의 뜻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천하신기의 상황을 인정하고 살려면 버려야 할 세 가지 태도로 삼거(三去)를 제안하고 있다. 극단으로 치우치는 것을 피하는 거심(去甚), 세를 불리는 사치를 피하는 거치(去侈), 자신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거만을 피하는 거태(去泰)가 그것이다.
기능주의와 조작주의를 믿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세상을 자신의 손바닥에 담고 머리로 움직일 수 있다고 큰소리를 친다. 그렇게 믿었던 사람들로 인해 오늘 국정 공백이 장기화되는 탄핵 정국을 초래하게 됐다. 기능주의와 조작주의는 세상을 지적 게임으로 보고 자신으로 인해 생긴 파국에 책임을 느끼지 않는다. 그냥 게임에 졌을 뿐이다. 그리고 나를 이겨보라고 말한다. 하지만 천하신기는 세상이 기능주의와 조작주의로 요리될 수 없다는 측면을 말하고 삼거는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조작주의의 파국에서 진정성의 의미를 되새겨봐야 할 때다.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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