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분위기 속에서 1월 18일 개봉하는 한재림 감독의 영화 ‘더 킹’도 그동안 개봉한 ‘내부자들’, ‘검사외전’, ‘터널’ 등처럼 상류층의 도덕적 타락을 조롱하는 정치 풍자영화의 계보 위에 있다. 하지만 ‘더 킹’이 풍기는 분위기는 앞서 개봉한 영화들과는 사뭇 다르다.
다른 영화들이 대부분 하나의 ‘사건’에 집중적으로 이야기를 투자하는 반면, ‘더 킹’은 ‘사건’이 아닌 ‘태수’(조인성 분)라는 한 명의 개인에게 이야기를 집중시킨다. 그래서 영화는 태수(조인성 분)와 한강식(정우성 분), 양동철(배성우 분) 등 세 명이 차를 타고 달려가다 교통사고를 당하는 장면으로 관객의 호기심을 돋운 뒤, 시계를 1980년대로 돌려 태수라는 한 개인의 이야기를 펼쳐내기 시작한다.
‘더 킹’의 특별한 점이라면 현대사의 시간대에서 눈을 돌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정치 풍자영화가 현실 사건과의 거리감을 두기 위해 의도적으로 현실의 사건과 인명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더 킹’은 현대사의 한 페이지 속에 ‘태수’라는 인물의 삶을 아주 깊숙하게 파묻는다.
그래서 ‘더 킹’에는 전두환 대통령부터 시작해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까지 이어지는 지난 30년 현대사의 계보와 비극들이 자료화면으로 직접 영화에 등장하며, ‘태수’와 ‘강식’ 등이 만들어가는 출세가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이 현대사의 궤도를 ‘더 킹’은 놀랄만큼 뛰어난 편집으로 뚫어낸다. 당초 157분이라는 긴 상영시간으로 알려졌던 ‘더 킹’은 개봉을 앞두고 134분으로 상영시간을 줄이면서 조인성과 여배우의 불륜, 배성우의 가족 이야기 등 중심되는 이야기와 관련없는 요소들을 거침없이 툭툭 쳐낸다. 영화 역시 정국을 좌우하는 검찰의 기획수사라는 묵직한 이야기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유쾌하고 빠른 리듬으로 이끌어간다.
‘더 킹’을 보는 또 하나의 재미는 캐릭터다. 영화는 대한민국 사회를 주무르는 검사들의 냉철한 모습보다 부와 권력, 향응에 찌들어가는 인간군상의 모습을 현란한 필체로 그려낸다. 그러면서 한재림 감독은 그 속에 ‘언중유골’이라 할 만한 뼈 있는 대사들을 펼쳐내며 비판정신 또한 잊지 않는다. 한재림 감독의 전작 ‘우아한 세계’의 전복적인 재미에 데뷔작 ‘연애의 목적’의 발기찬 캐릭터와 대사들이 결합됐다고 할 수 있겠다.
발칙하다 싶을 정도로 경쾌한 캐릭터와 편집을 통해 두 시간이 넘는 상영시간이 지루하지 않게 그려내면서도 ‘더 킹’은 상당히 논쟁적 요소들을 품어낸다. 우연의 일치라고 하지만 우주의 기운이 가득 담긴 굿판 모습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한 단면을 직시하는 기분이고, 故 노무현 대통령 서거 장면 등 현대사의 비극적 순간이 영화 속 ‘태수’의 삶과 접점을 형성하게 되는 순간에는 한재림 감독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게 된다. 특히 노무현 前 대통령이 검찰수사를 받을 당시 창문에서 비열한 웃음을 흘리던 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의 모습이 정우성의 모습과 겹쳐지는 순간은 영화와 현실의 가장 극적인 접점이다. 1월 18일 개봉.
/원호성기자 sestar@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