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안에 직업의 70%가 사라질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지만 국내 대학생들은 수십년째 똑같은 전공과 교과목으로 구성된 교과체계에서 단순 지식 전달이라는 ‘같은’ 방식으로 학습하고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세상은 급속도로 변하는데 대학만 여전히 우물 안 개구리처럼 변화를 거부하고 있죠. 학생 선발, 교수 채용, 강의 등 모든 분야에서 개방의 DNA를 갖추는 것이 대학 리더십의 핵심입니다.”
김도연(사진) 포스텍 총장은 지난 11일 경상북도 포항시 포스텍에서 진행한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시종일관 ‘개방을 통한 혁신’을 강조했다. 대학 교육의 혁신은 수십년간 지속한 조직의 폐쇄성 극복에서 출발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학가의 오랜 관행이던 교수 순혈주의부터 혁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는 3월 포스텍은 국내 최초로 기업 연구인력을 교원으로 채용하는 ‘산학일체 교수제도’를 시행한다. 향후 4년간 채용할 150명의 신임 교원 중 3분의1 이상을 기업 연구소에서 일하거나 기업 추천을 받은 인력으로 충원할 계획이다. 김 총장은 “LG디스플레이와 포스텍이 함께 뽑은 교수가 3월부터 학생들을 가르친다”며 “현재 효성중공업 등 다른 기업과도 협의 중인데 앞으로 총 20개의 연구그룹을 함께 만들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현재 기업이 혁신을 위해 정보를 수집할 때 대학을 활용하는 비율은 회사 내부나 외부업체, 전문저널과 서적에 비해 턱없이 적은 15% 수준에 불과하다”며 “산학일체 교수제도가 활성화된다면 보다 가치 있는 지식 창출이 가능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김 총장은 “대학도 ‘논문을 위한 논문’에 몰두하는 관행에서 벗어나 기업가형 대학으로 거듭나 가치 있는 지식을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며 “대학이 당장 기업이 처한 단기적 애로사항은 해결하기 어려워도 5~10년 길게 보고 새로운 먹거리를 찾는 일은 얼마든지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제시했다.
김 총장은 세계적 명문대학의 혁신 사례를 살펴보면 국내 대학 역시 변화의 단초를 마련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MIT는 2014년 별도 태스크포스를 꾸려 ‘MIT 교육의 미래’라는 리포트를 자체 발간했다. 이 리포트는 과감한 실험 참여, 서머스쿨 제공, 글쓰기 교육 강화 등 교육 혁신부터 대학 브랜드 신뢰성 제고를 위한 학비 완화, 기술이전 수입 확대 등 외연 확장까지 다양한 청사진을 그렸다. 유아부터 12학년까지 STE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Mathematics) 학습을 향상시키는 유아교육 프로그램, 기숙형 고등교육 및 평생학습, 교수들의 교육 혁신을 지원하기 위한 디지털 학습 연구소 등의 개념은 좁은 울타리에 갇힌 국내 대학의 시야를 대폭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 총장은 대학 내부에 촘촘하게 자리 잡은 집단 이기주의 극복도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외국에서는 단과대 학장 단계부터 대부분 외부 인사를 선발하지만 우리나라는 전국 200여개 대학 중 자교 출신이 아닌 총장을 두고 있는 대학은 손에 꼽을 정도”라며 “한 대학에서 20년 넘게 근무한 사람이 총장이나 학장이 되면 이미 내부적으로 얽힌 게 많아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비판했다.
융합의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전공 칸막이 해소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 내에서 가장 실용적이어야 할 공과대학마저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돌입한 오늘날까지 여전히 특정 분야의 전공만 가르치는 시대착오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며 “전공 경계를 낮추기 위해서는 입학 전형 때부터 무학과 전공으로 뽑는 것이 하나의 대안”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포스텍은 오는 2018년부터 모든 신입생을 학과 구분 없이 단일계열(무학과)로 선발한다.
대학 개혁의 리더십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총장과 학장 임기 등이 충분히 보장되는 현실적인 조치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김 총장은 “지금처럼 총장과 단과대학 학장 임기가 4년이면 사실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고 후임자에게 물려줄 수밖에 없다”며 “6년 임기제를 도입한 일본 국립대 수준이라도 최소한 따라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학 선발방식 역시 바뀌어야 한다. 김 총장은 “요즘 같은 시대에 수능을 잘 본 친구를 인재라고 부르는 것부터가 난센스”라며 “MIT에서는 상위 5% 성적 학생은 동점 처리하고 일본 고등학교에서는 인터내셔널 바칼로니아 제도를 도입해 철학적 사고를 묻는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지금처럼 학생들이 12년간 오지선다형의 객관식 사고에 물들여지는 한 대학이 제아무리 애써도 글로벌 무대에서 통하는 인재로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서울대 등 상위권 대학들이 인재를 독점하려는 욕심에서 벗어나 지역균형선발제와 같이 다양한 혁신을 꾀한다면 대학가에서 변화의 바람은 생각보다 강하게 불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다만 김 총장은 모든 대학이 유행처럼 똑같은 혁신을 하느라 교육기관의 기본 사명을 소홀히 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들어 대학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창의적 인재 양성을 외치지만 사실 창의적으로 타고난 사람은 5% 수준에 불과하다. 지금처럼 변혁의 시대일수록 배려의 정신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 기관의 사명을 되새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포항=박진용기자 yongs@sedaily.com
◇He is △1952년 서울 △1974년 서울대 재료공학과 졸업 △1976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재료공학석사 △1979년 프랑스 블레즈파스칼대 재료공학박사 △1982~2008년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 △2005~2007년 서울대 공과대학장 △2008년 2~8월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2008~2011년 울산대 총장 △2011~2013년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 △2013~2014년 일본 도쿄대 특임연구원 △2015년~현재 포스텍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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