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그 커다란 분노가 나의 괴로움을 씻어주고 희망을 안겨 주기라도 하듯이 표적과 별들이 가득 찬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나는 처음으로 세계의 다정스러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다.”
알베르 까뮈의 소설 ‘이방인’의 마지막은 사형을 앞둔 주인공 메르소의 이러한 독백으로 끝이 난다. 세계, 즉 사람들로부터의 관심이 폭력적일 수 있으며 무관심이 오히려 다정스럽다는 ‘절대 고독’에 관한 독백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단지 세상의 끝(감독 자비에 돌란)’은 바로 사람이란 영원히 혼자인 존재일 수밖에 없음을 시한부 선고를 받은 루이(가스파르 울리엘)의 짧은 가족과의 만남을 통해 보여준다.
스무 살 무렵 집을 떠나 파리에서 생활하면서 가족과는 거리를 두었던 유명 작가 루이는 생을 마감할 시간이 다가오자 고향을 찾는다. 루이를 늘 그리워했던 엄마(나탈리 베이), 여동생 쉬잔(레아 세이두), 형 앙투완(뱅상 카셀) 등은 그를 반갑게 맞을 준비를 하지만 오랜만의 만남은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다. 엄마와 여동생은 그간의 서운함을 루이에게 털어놓고, 형도 내심 루이의 방문이 반갑지만 ‘틱틱’거리기만 할 뿐이다. 처음 만난 형수 카트린(마리옹 코티야르)만이 루이와 차분히 이야기하며, 가족 사이에 흐르는 긴장감을 완화 시키려 노력한다.
루이는 단 3시간 동안 고향 집에 머물며 자신이 곧 죽는다는 사실을 알리려 하지만 가족들은 그가 편하게 말할 틈을 주지 않는다. “널 이해 못해. 하지만 사랑해. 그 마음만은 누구도 못 뺏어가”라고 말하는 엄마. 루이는 엄마의 사랑은 받을 수 있을지언정 자신의 삶과 죽음에 대해서는 이해받지 못할 것이라는 걸 깨닫고, 그때마다 루이는 고독의 절정으로 치닫는다. 영화의 엔딩곡도 ‘세상의 끝에’ 내가 쉴 곳으로 존재할 것 같은 집과 가족마저 의미없다는 절대 고독을 이렇게 노래한다. “집은 항구가 아니야. 마음을 다치는 곳이지, 오 주여 너무 힘이 듭니다. 내 고난은 신밖에 모르시니.”
현재 프랑스에서 가장 독보적이고 신비로운 매력으로 커다란 사랑을 받고 있는 가스파르 울리엘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확고한 팬덤을 확보한 마리옹 코티야르와 뱅상 카셀을 만날 수 있는 것도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다. ‘얼라이드’에서는 치명적인 매력의 스파이로, ‘어쌔신 크리드’에서는 이성적인 과학자로 현재 국내 관객들과 만나고 있는 코티야르는 ‘단지 세상의 끝’에서는 어딘지 모르게 기죽어 있는 촌부로 색다른 연기를 선보인다. 모니카 벨루치의 전 남편이자 가장 ‘지적이고 섹시한’ 배우 뱅상 카셀도 이번 작품에서는 화만 내는 다소 무식한 루이의 형으로 연기 변신을 시도했다.
세계적인 감독으로 급부상한 자비에 돌란은 그의 여섯 번째 영화 ‘단지 세상의 끝’으로 69회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과 에큐메니컬상을 수상하는 등 2관왕에 올랐다. 1989년생의 작품이라기에는 놀랍도록 깊이 있는 메시지와 연출로 호평받았으며 프랑스 개봉 첫 주에 40만 명을 동원해 흥행에도 성공을 거두었다. 또 ‘단지 세상의 끝’은 프랑스의 세계적 극작가 장 뤽 라갸르스의 동명의 희곡을 돌란 감독이 재해석했다.
/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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