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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제로 트럼프 시대] '미국만의 리더' 트럼프, 세계질서 뒤흔드나

美 우선주의 앞세운 보호무역

中·신흥국과 정면충돌 예고

파리협정·TPP 등 침몰 위기

"미국이 세계 불안요인 될 것"





‘세계의 리더’ 대신 ‘미국만의 리더’를 선언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이 20일(현지시간) 취임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70년 이상 유지돼온 세계 질서도 새로운 시험대 위에 올라섰다.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앞세워 대권을 거머쥔 트럼프는 미국 내 일자리 창출에 ‘올인’하며 무역장벽 쌓기에 나서 주요2개국(G2)으로 부상한 중국은 물론 멕시코 등 신흥국과도 정면충돌을 예고했다. 그는 러시아의 세력 확장을 막기 위해 미국·유럽 간 구축해온 핵심 안보체제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무용론까지 제기하는 등 노골적인 친러 행보를 보이며 글로벌 동맹지도까지 뒤흔들고 있다. 심지어 세계대전 후 열강들의 대결구도 속에서 갈등의 중재자 역할을 해온 유엔조차 ‘잠재력이 있지만 지금은 모여서 떠들고 즐기는 사교클럽’으로 치부했다.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 시대(The Trump era)’를 맞아 “전후 세계 질서의 보증인이던 미국이 세계의 불안 요인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뉴욕타임스 등 미국 주요 언론은 트럼프 당선인의 취임을 앞두고 새 정부가 출범하면 파리기후협정,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 미국 주도로 체결된 국제적 합의들이 유명무실해지거나 폐기될 운명을 맞을 것이라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대통령 당선 이후 두 달여간 보인 그의 모습은 세계 최강국의 리더보다는 사업가에 훨씬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다. 부동산 재벌 출신답게 대내외 주요 현안을 명분보다는 눈앞의 비용과 실익 위주로 재단하면서 끊임없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이 같은 행보에 가장 심각한 균열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 G2 관계다. 선거기간 내내 중국 제품에 45%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선언한 트럼프는 당선 이후 중국의 핵심 외교원칙인 ‘하나의 중국’을 협상 테이블에 올리며 중국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지난 1979년 미중 수교 이후 미 정상급 인사로는 처음으로 지난해 12월 초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통화를 한 그는 국제 외교가에 ‘모든 기존 체제(old certainties)가 바뀌거나 무너질 수 있다’는 인식을 심었다.

트럼프가 촉발한 G2 갈등은 북핵 위기를 심화하고 한미 무역 관계에도 악영향을 줄 위험 요소로 부상했다. 스콧 스나이더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은 “한국의 안보와 경제에는 방위비 분담금 증액이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아니라 미국 신정부와 중국의 갈등이 더 큰 위협”이라고 말했다.



미 노동자 일자리 확보를 명분으로 내세운 멕시코 등 주변 국가와 주요 기업들에 대한 노골적 압박은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세계 경제 질서를 혼돈으로 몰아넣고 있다. 멕시코에 공장을 지어 미국에 수출하면 국경세(border tax)를 부과하겠다는 트럼프의 위협에 글로벌 기업들은 잇따라 멕시코 투자를 철회하거나 주저하고 있다. 국경 장벽 건설에 세금 협박까지 더해지면서 일각에서는 이 같은 행보가 미국 경제에 부메랑이 돼 돌아올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윌리엄 더들리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17일 “국경세는 달러화 강세를 초래하고 수입품의 가격 인상을 부추길 것”이라며 “경제에 예상치 못한 악영향을 줄 국경세는 채택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유럽에서도 기존 안보와 경제지형을 뭉갤 태세다. 그는 영국·독일의 유력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러시아(구소련)의 위협에 대응하는 미국·유럽의 안보기구인 나토를 “쓸모없는 것”으로 격하하고 “더 많은 회원국이 (영국처럼) 유럽연합(EU)을 떠날 것”이라며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붕괴를 예상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세계 평화 유지(peacemaker)를 자임하던 미국이 트럼프 시대에 ‘분열 제조기(piecemaker)’가 될 처지라고 일침을 놓았다.

EU 체제에 사실상 반대하는 트럼프 당선인은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한 러시아에 대한 제재 해제에는 적극성을 보이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브로맨스’를 연출하고 있다. 미 대선에 개입해 트럼프 편에 섰던 러시아와 미국의 관계 개선은 동유럽뿐 아니라 독일·프랑스·영국 등의 안보에도 경고음을 울릴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트럼프 행정부에 유대계 등 친이스라엘 인사가 많고 마이클 플린 백악관 안보보좌관 내정자처럼 이슬람 전체를 문제적 시각으로 보는 강경파들이 득세하면서 ‘문명 충돌’에 버금가는 혼돈이 중동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뉴욕=손철특파원 runiro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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