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마다 촛불집회에 참가하는 박진형(30)씨는 최근 모바일 메신저를 열어보고 깜짝 놀랐다. ‘이석기 내란 음모사건 피해자 구명위원회’로부터 감사 메시지를 받아서다. 순간적으로 지난 7일 ‘박근혜 퇴진’ 피켓을 나눠 주던 부스에서 “서명 한 번만 해주고 가라”는 한 여성의 요청에 별생각 없이 이름과 전화번호를 남긴 게 기억났다. 박씨는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서명한 잘못도 있지만 촛불집회를 이용하려는 정치세력들이 많아 실망이 크다”면서 “당분간은 촛불집회에 나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촛불집회가 회를 거듭할수록 일부 단체의 정치적 구호가 빈번해지자 박씨처럼 집회 피로감을 호소하는 시민들이 늘고 있다.
20일 시민단체 등에 따르면 최근 촛불집회에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석방’이나 ‘이석기 전 의원 석방’ 등의 구호를 외치는 진보 진영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말부터 집회 때마다 한 전 위원장과 이 전 의원에 대한 구명운동을 펼치며 참가자 시선 잡기에 열을 올렸다. 앞서 지난해 11월30일에는 ‘민주노총 파업 지지성명’이 발표되기도 했다.
지난 14일 열린 12차 촛불집회에서는 진보진영 관계자들이 연단에 올라 △대기업 골목상권 진입 반대 △통합진보당 해산 부당 △노동계 파업 지지 등을 외쳤다. 정당 해산으로 꿈을 잃었다고 주장하는 통합진보당 지지자들은 영상물을 방영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민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12차 집회에 참석한 최혜민(36)씨는 “처음에는 재미있었는데 이제는 공감할 수 없는 구호들이 너무 많다”며 “이런 식이면 가뜩이나 줄어든 사람들이 더 줄어들 것 같다”고 말했다.
올 들어 광화문 광장의 촛불은 조금씩 잦아드는 모양새다. 12차 집회 참가인원은 1차 집회 2만명 이후 가장 적은 13만명에 그쳤다.
촛불집회를 주최하는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은 “갑작스레 추워진 날씨 탓”이라고 설명했지만 전문가들은 여기저기 난무하는 정치적 구호도 집회 참가자들의 발길을 돌리게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문조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집회에서 어젠다 끼워팔기를 하면 일반 시민들의 참여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100만 시민의 공감대를 가져온 것은 말도 안 되는 최순실과 대통령의 국정농단이지 논란의 소지가 다분한 특정 계층의 주장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양사록기자 saro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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