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돼먹은 영애씨’에서 고세원이 연기하는 ‘김혁규’의 모습은 지난 10년의 세월만큼이나 파란만장하게 변했다. 이영애(김현숙 분)의 여동생인 이영채(정다혜 분)와 연애를 하던 대학생 시절만 해도 키도 크고 멋지면서 자유로운 삶에 대한 낭만이 가득한 멋진 이미지였지만, 이영채와 결혼한 이후에는 취업도 실패하고, 손 대는 사업마다 실패하고, 이제는 아예 ‘백수’나 다름없는 만년 고시생으로 전락하면서 장모님의 구박덩어리로 전락한지 오래다.
하지만 고세원에게는 이런 찌질한 모습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막돼먹은 영애씨’에서는 구박덩어리 신세지만, 아침드라마나 주말드라마로 무대를 옮기면 고세원은 근사한 정장에 젠틀한 매너를 겸비한 멋진 ‘실장님’으로 변신한다. 백수 사위와 일류 대기업의 멋진 실장님, 이 두 가지 모습 중 고세원의 진짜 모습은 과연 무엇일까?
“제 진짜 모습이요? 사실 딱 중간인 것 같아요. 진지한 면도 있고, 유쾌한 면도 있고. 하지만 혁규처럼 웃기는 모습도 제 안에는 분명히 있기도 해요.”
‘막돼먹은 영애씨 15’에서 고세원은 모처럼 비중있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시작부터 제주도에서 처형인 김현숙과 같이 사업을 하다 사기를 당해 처절한 ‘삼시세끼’를 찍다가, 서울에 올라와서는 이영애 디자인 사무소의 직원으로 출근을 시작하며, 사무실 더부살이를 하는 낙원사 식구들과도 얽히기 시작한다.
게다가 고세원을 더욱 난감하게 만든 것은 바로 ‘막돼먹은 영애씨’와 상관없는 외부일정이었다. 고세원은 지난해 6월부터 12월까지 SBS 아침드라마 ‘사랑이 오네요’에서 주인공 ‘나민수’로 출연하고 있었고, ‘사랑이 오네요’가 한창 막바지에 접어들 무렵 ‘막돼먹은 영애씨’에 겹치기 출연을 해야만 했다. 몸이 두 개라도 버티기 쉽지 않은 일정이었다.
“그야말로 생사를 오가는 스케줄이었어요. 예전 2010년에도 한 번 이런 적이 있어서 다음에는 절대 스케줄이 겹치지 말아야겠다 다짐을 했는데, 또 이렇게 겹치네요. 이번 시즌에는 회사하고 집을 왔다갔다 하다보니 분량이 엄청 많았어요. 처음에는 그래도 정말 의욕적으로 열심히 시작했는데, 뒤로 갈수록 주인공인 김현숙씨하고 맞먹는 스케줄을 소화하다보니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다음 시즌에는 낙원사에서 퇴사시켜달라고 건의할까도 고민중입니다. 하하.”
이렇게 일정이 겹쳐지다보니 재치있는 콜라보도 탄생했다. 백수인 ‘김혁규’가 딸을 데리러 유치원에 가는 길에 ‘사랑이 오네요’의 ‘나민수’ 캐릭터처럼 멋지게 정장을 입고 가서 ‘실장님’ 행세를 하는 에피소드다. 구박덩어리이던 ‘김혁규’가 아마도 근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멋지게 등장한 에피소드였을 것이다.
“아침드라마 속 제 캐릭터와 ‘막영애’의 콜라보라고 해서 대체 작가들이 어떻게 콜라보 시킬지 저도 기대가 컸어요. 이번 시즌에는 전체적으로 대본에 충실하게 연기하려고 해서 거의 애드리브을를 안 했는데, 그 장면에서는 저도 애드리브를 제대로 해봤죠. 장모님이 콩나물 사오라고 전화한 장면에서 멋있게 보이려고 900원대에 매입하는 것을 검토해보겠다고 한 말이 애드리브였어요.”
사실 고세원을 대중에게 먼저 알린 이미지는 ‘막돼먹은 영애씨’의 철부지 사위 ‘김혁규’도, 아침드라마 속 ‘실장님’도 아닌 악역이었다. 2007년부터 tvN ‘막돼먹은 영애씨’에 출연해왔지만 당시만 해도 tvN 자체의 인지도가 낮아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고, 그러던 중 2009년 KBS 주말드라마 ‘수상한 삼형제’에서 ‘왕재수’를 연기하며 악역으로 먼저 주목을 받게 됐다.
“처음에 ‘왕재수’ 캐릭터를 통해 악역으로 알려지기 시작해서, ‘신데렐라 언니’와 일일드라마 ‘세자매’까지 연속으로 악역을 세 번 했어요. 아무래도 악역이 어떤 역할보다도 대중에게 강렬하게 다가설 수 있는 캐릭터잖아요. 그러고나니 이제 주변에서 좀 알아봐주시더라고요. 이후에는 다행히 착한 역할이나 실장님 캐릭터를 많이 하면서 악역 이미지가 많이 지워졌죠.”
“제가 1997년에 KBS 공채로 데뷔했으니 벌써 연기를 시작한지 20년이 됐어요. 저는 항상 배우는 여러가지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전혀 다른 캐릭터라면 최대한 저는 극과 극의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노력을 하고, 그것이 이번처럼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면 더욱 좋죠. 앞으로도 캐릭터에 국한되지 않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러고보면 고세원이라는 배우의 얼굴 역시 상당히 흥미롭다. 미소를 짓고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으면 영락없이 ‘막돼먹은 영애씨’의 ‘김혁규’가 보이지만, 그 미소를 조금만 거둬도 젠틀한 ‘실장님’의 이미지로 변한다. 여기에 조금만 더 인상을 쓰자 자연스럽게 등골에 소름을 돋게 하는 악역의 이미지가 된다. 개성이 있으면서도 자유자재로 변하는 얼굴은 배우로서 그가 가진 큰 무기다.
“서로 다른 캐릭터들을 이렇게 옮겨다니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아요. 배우는 캐릭터를 맡으면 몰입해서 연기를 하거든요. 그러면 캐릭터를 끝낸 후에는 본연의 나로 돌아오는 작업이 중요해요. 저는 이 비우는 작업을 잘 해요. 이것이 제가 극과 극의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는 원동력인 것 같아요.”
“비우는 작업은 공연을 하면서 많이 배웠어요. 최근에는 뜸했지만 대학로에서 5년 정도 동안 서로 다른 배역의 뮤지컬을 여덟 작품 정도 쉬지 않고 했어요. 그리고 작품 하나를 끝내면 여행을 가던지, 집에서 푹 쉬던지 몸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며 비우는 작업을 가지려고 하죠. 비우는 작업이 저에게는 ‘고세원’이라는 사람으로 돌아오는 과정이에요.”
아마도 ‘막돼먹은 영애씨’가 계속되는 한 고세원이라는 배우는 ‘김혁규’라는 이름으로 계속 ‘막돼먹은 영애씨’에 출연하게 될 것이다. 10년을 넘도록 같은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대중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는 것은 배우로서도 보람찬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이번 시즌에는 이영애(김현숙 분)와 낙원사의 전 사장인 이승준의 로맨스가 급진전을 하면서 그동안 내 편 없는 사위로 외로웠던 ‘김혁규’에게 새로운 아군이 생길 가능성도 제시됐다. 다음 시즌에서 이승준이 사위로 들어오면서 고세원과 펼칠 이야기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많은 분들이 그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승준이 영애와 결혼하게 되면 집안에 철없는 사위가 두 명이 되면서 장모님에게 구박을 받는 모습이 너무나도 기대된다고. 저도 벌써부터 기대되요.”
/원호성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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