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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홍우 칼럼] 군의 명예는 진실의 바탕 위에서만 가능하다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전쟁영웅 심일 소령 공적 진위 공방

군의 자긍심 드높일 기회로 삼아야

충분한 조사·토론·투명성 확보 필요





처음 봤다. 그런 식의 공청회는. 지난 24일 열린 심일 소령 공적확인위원회 공청회는 사회자와 주제 발표자, 토론 패널이 누구라는 기본 정보조차 알려지지 않았다. 형식은 공청회였으나 진행은 입장 발표장에 가까웠다. 주최 측은 이견을 제기하는 토론자를 떠밀며 제지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강도는 세지 않았어도 주최 측에게 떠밀린 상대방은 현역 육군 준장. 제복을 입은 장성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그렇게 취급을 받는 게 놀라웠다. 제복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마저 없다니. 육군군사연구소장 한설 장군(육사 40기)은 6·25전쟁 영웅인 고(故) 심일 소령의 공적이 부풀려졌다는 의견을 내놓다가 묵살과 저지를 당했다. 6·25가 낳은 최고의 영웅이라고 할 수 있는 심 소령의 공적에 대한 부정은 군의 입장에서는 껄끄러울 수도 있는 사인일 터인데 그는 맹점을 파고들었다.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민간위원들이 포함된 위원회가 군의 잘못을 질타하고 군 고위장교들은 이를 한사코 부인하기 마련이라고 생각했던 평소 통념과 정반대의 상황. 한 장군은 왜 ‘선배 장교의 영웅 행위’를 부인했을까. 논란이 불거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6월. 마지막 주월공사를 지낸 이대용 장군(예비역 육군 준장)이 ‘심일 신화는 사실과 다르다’고 밝히면서부터다. 전쟁 초기 육탄돌격으로 북한군 자주포를 격파했다는 무용담과 달리 실제로는 대전차포를 방기한 채 적전 도주했다는 노병의 증언은 파문을 일으켰다.

국방부 군사편찬위원회(군편)는 이 장군의 증언은 사실이 아니라는 반박 보고서를 국방부와 청와대에 올렸다. 국방부는 자체 검증을 위해 육군군사연구소(군연)에 사실 확인 지시를 내려보냈다. 통례에 미뤄본다면 군연의 추가 조사는 일종의 통과의례. 군이 치부를 스스로 드러낸 적이 있었던가. 하지만 군연은 군편의 보고와 달리 이 장군의 주장이 사실에 가깝다는 결론을 내렸다. 태극무공훈장과 미 은성무공훈장을 받은 심 소령의 공적 확인을 둘러싸고 군편과 군연의 대립이 시작된 것이다.

진실은 무엇일까. 알 수 없다. 이 장군에 따르면 당시 심 중위는 적전 도주로 직위 해제당하고 연락장교로 보직 변경된 후 평양 인근 전투에서 낙오, 민가로 숨었으나 중공군에게 포위돼 총에 맞아 숨졌다. 무공훈장을 받게 된 연유는 당시 심 중위 부모들의 사연. 아들 네 명 중에 셋을 군대와 경찰·학도병으로 보내 다 죽게 됐다는 한탄을 들은 사단 지휘부의 판단에 따라 훈장 상신과 영웅 조작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 장군은 아들들을 잃은 부모들의 심정을 헤아려 모두 돌아가신 뒤에야 이 사연을 밝혔다고 한다. 심 중위와 비슷한 시기의 ‘육탄 5 용사’도 크게 부풀려졌다는 의심을 받는다. 물론 여기에 대한 반론도 있다.



군편과 군연의 이례적인 대립이 어떻게 결말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분명한 사실은 군이 과거와 다르게 규명 의지를 보였다는 점이다. 한설 장군의 말이 떠오른다. “진실이 거짓이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면 아무도 용감한 죽음을 선택하지 않는다. 군이 목숨을 걸고 싸울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기 위해 진실을 밝혀야 한다.” 군 수뇌부는 이를 무겁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조사가 제대로 이뤄진다면 어떤 결론이 나도 모두 승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우의 수를 따져보자.

먼저 심 소령의 공적이 재확인되는 경우다. 심 소령의 명예는 더욱 빛날 수 있다. 반대의 경우, 즉 조작으로 밝혀지더라도 군은 피해 볼 게 없다. 오히려 성숙해진 모습을 보이고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기회다. 다만 후자의 경우라도 지킬 게 있다. 심 소령 3형제가 꽃다운 20대에 전사했으며 그 부모의 헌신은 불멸의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 국군의 초기 승전으로 손꼽히는 춘천전투의 의미도 몇몇 용사가 주도한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포탄을 나른 시민들과 정확한 사격을 퍼부은 포병대대를 포함한 6사단 전체의 공훈이라는 점을 더욱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

모두가 승리하려면 전제 조건이 있다. 중립적이고 투명하며 시간에 쫓기지 않는 조사와 토론이 필요하다. 제대로 된 공청회를 몇 차례라도 더 열어야 한다. 일각에서는 6월 이전에 결론을 낼 것이라는 풍문이 나돌지만 국방부는 이를 부인했다. 철저하게 검증하겠다는 의지로 읽혀 다행스럽다. 심 소령이 공식적으로 전사 처리된 지 꼭 66주년을 맞는 오늘, 명복을 빈다. 군에게는 소명이 있다. 진짜 명예는 진실의 바탕 위에서만 가능하다.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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