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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우르의 대박과 쪽박





남태평양 한복판의 작은 섬 나우루(Nauru). 여의도 두 배 반 크기에 인구라야 달랑 1만 여명의 초미니 공화국인 나우루는 한때 세계 최고의 부자 나라였다. 1981년 1인당 국민소득이 미화 1만 7,000 달러. 요즘 기준으로야 중진국 수준이지만 당시에는 아랍에미리트에 이어 두 번째 부자나라로 꼽혔다. 아시아 1위의 부자나라 일본의 1인당 국민소득이 미화 9,834달러로 1만 달러에 못 미치던 시절이다. 한국에 비해서는 10배가 넘는 국민소득을 올렸다.

부의 원천은 새똥. 바닷새의 배설물이 수백만년 동안 쌓여서 형성된 인광석 덕분이다. 거대한 인광석은 나우루에 축복이었을까. 반대로 화를 불렀다. 코코넛 농사와 어업에 종사하며 평화롭게 살아가던 나우루섬은 자원의 존재가 알려지며 열강의 침략을 받았다. 독일과 영국 식민지를 거치는 동안 유럽 자본이 중국인 노동력을 사서 개발한 인광석 광산은 지역 사회에 돈을 안겨줬으나 독립도 늦어졌다. 2차 세계대전 중에는 전략적 위치를 중시한 일본군이 점령, 비행장도 지었다.

전후 영국과 오스트레일리아(이하 호주), 뉴질랜드의 신탁통치를 받던 나우루는 1968년1월31일, 독립한 뒤부터 고도 성장 가도를 달렸다. 인광석 수출을 크게 늘린 덕분이다. 문제는 식민지 시절부터 이어져 온 난개발과 무절제한 채광 작업이 더욱 심해졌다는 점. 일부 지식인들과 외국인 생태학자들이 부작용을 경고했으나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개발을 강행하던 신생 나우루 정부는 국민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나우루 정부는 국민들에게 출산에서 교육, 치료, 노후 보장까지 모든 것을 책임진다는 공약을 내걸고 그대로 실행했다. 내국인에게는 세금도 걷지 않았다. 세금 수입이 없는 상태에서 과도한 정부 지출이 일어났어도 나우루 공화국은 인광석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를 흥청망청 써댔다. 섬을 한 바퀴 도는데 불과 30분 밖에 안 걸리는 작은 섬에 벤츠와 람보르기니 등 고급 승용차가 넘쳐나고 단 하나 뿐인 공항에는 개인 자가용 비행기들이 들어찼다. 걷기 조차 싫어하는 나우루 부자들을 노리고 진출한 외국 자본은 드라이브인(drive-in) 식당과 극장을 지었다.



문제는 헤픈 씀씀이를 감당하기에는 자원이 유한(有限)했다는 점. 인광석 자원이 2000년께부터 고갈되며 나우루 경제는 급락의 길을 걸었다. 모든 공산품을 수입하고 심지어 먹는 물까지 외국에서 사서 쓰는 처지, 구조적인 무역수지 적자에 빠져도 국민들은 사태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노동을 잊어버린 국민들은 돈이 떨어져도 일하기보다 정부를 원망했다. 최근 크게 올랐다고 하는 1인당 국민소득이 5,000 달러 수준. 20세기 후반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새똥이 가져온 풍요의 저주’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성인 남성의 97%, 여성의 93%가 비만증에서 시달리고 있다. 당뇨도 심해 전 국민의 40% 당뇨 환자다. 천혜 환경을 가진 남태평양에 살면서도 평균 기대수명도 짧다. 남성 60.9세, 여성 68.0세.

바닥에 이른 나우루 경제의 주 수입원은 크게 두 가지. 인근 참치잡이 어장 어업권을 외국 회사에 매각하는 수입과 호주 정부가 운영하는 난민촌을 나우루섬에 유치한 대가로 받는 원조가 정부 수입의 절대 비중을 차지한다. 나우루 정부는 지난 2014년부터 소득세를 매기고 있으나 아직은 미미한 수준이다. 그나마 좋은 소식은 다시금 바다에 나서는 나우루 주민들이 늘고 있다는 점. 어업과 노동 덕분에 비만도 역시 개선되고 있다 한다. 조금씩 희망을 찾아가고 있으나 나우루는 늘 국가 부도 위험에 시달리고 있다. 호주의 자비심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일부에서는 지구 온난화로 섬 전체가 바다에 잠길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도 나온다.

나우루의 흥망성쇠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자명하다. 최소한의 노동으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던 평화의 섬에서 광기의 개발과 방탕한 소비를 거친 끝에 파탄을 맞은 나우루가 남의 얘기로 들리지 않는다. 미래도 기약할 수 없는 마당. 나우루는 인간의 모습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수천만년 동안 퇴적된 지하자원을 순식간에 써버린 ‘현대 문명’이 나우루와 다른 게 무엇인가. 환경파괴로 인한 재앙에 직면한 나우루는 지구촌의 거울이다.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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