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펑 쏟아지던 눈이 그치고 진눈깨비가 오락가락하더니 이내 빗줄기로 바뀌었다. 길옆으로 쌓여 있던 눈이 시나브로 없어지더니 도로 위가 물로 흥건해졌다. 도로상태는 비교적 양호했지만 녹은 눈 위를 지날 때마다 바퀴에 치인 물은 흩어져 차를 적셨다. 하늘은 여전히 꾸물거렸다. 노보리베쓰(登別)가 가까워지면서 길 양쪽으로 숲이 이어지다가 산이 끝나면 계곡이 나타났다. 노보리베쓰에 진입했음을 알리는 입간판을 지나 온천들이 들어선 시내에 들어서자 도깨비 조형물이 먼저 관광객들을 맞았다.
여기부터가 호텔과 온천들이 빼곡한 중심가다. 홋카이도를 대표하는 온천지역으로 들어선 것이다. 노보리베쓰의 온천 역사는 러일전쟁 당시 부상병들을 위한 휴양시설이 건립되면서 비롯됐다. 아이누어로 ‘누푸루펫(색이 진한 강)’이라는 말에서 유래한 노보리베쓰는 석회질을 함유한 온천수가 강물로 유입되면서 흰색의 물빛을 띠어 붙은 이름이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리자 수십대의 버스에서 관광객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들려오는 말소리가 일본에서는 좀처럼 듣기 힘들던 중국어다. 한미 양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배치 결정 이후 중국 정부가 한국관광을 억제한다더니 그 인파가 일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듯했다.
중국 단체 관광객들과 섞여 데크를 따라 ‘지고쿠다니(地獄谷)’으로 접어들자 오른쪽 산과 골짜기들은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황토 위로 유황 연기를 뿜어내고 있다. 이 풍경 하나만으로도 노보리베쓰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도깨비라는 것은 일견 타당해 보였다. 달걀이 썩는 듯한 냄새가 풍겨왔고 유황 연기가 피어오르는 풀 한 포기 없는 산기슭은 말 그대로 지옥의 살풍경처럼 비쳤다.
난생처음 보는 풍경에 두리번거리면서 데크 끝에 다다르자 테센연못(鐵泉池)이 나타났다. 입간판에는 한글로 ‘온천의 온도는 80도입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는데 용출하는 물은 못 바닥으로부터 함께 올라오는 기포 때문인지 끓는 물처럼 보였다.
이곳을 지나 데크 끝에서 왼편 산등성이를 타고 올라가니 오유누마(大浴沼)로 가는 길이 이어졌다. 유황 연기로부터 떨어져 있는 이곳 데크 길에는 전날 내린 눈이 곳곳에 얼어붙어 몹시 미끄러웠다. 조심조심 발길을 옮겨 산을 넘어가니 오유누마가 나타났다. 중국 관광객들은 산길을 넘는 게 귀찮았는지 오유누마까지는 넘어오지 않아서 구경꾼은 우리뿐이었다. 초입의 지옥곡이 물 없는 민둥산 기슭인 데 비해 오유누마는 온천수가 솟아나는 소(沼)로, 관광객들 몇 명이 모여서 사진을 찍고 있다. 해발 200m의 노보리베쓰는 산림 지역이라 지고쿠다니 근처를 제외하면 숲이 울창하다. 일대는 하루 1만톤의 온천수가 용출되는 온천지대로 이곳의 온천수는 유황·식염천 등을 함유한 뜨거운 물이 샘 솟아 온천백화점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을 정도다.
지고쿠다니를 일순하고 나오는 길에 관광안내소에 들러 챙긴 브로슈어에는 “노보리베쓰는 일본 3대 온천 중 하나로 꼽히며 해마다 2월이면 온천축제가 열린다”고 적혀 있다. 이때에는 도깨비로 분장한 사람들이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분위기를 돋운다고 한다. 또 6월에는 ‘지옥곡 도깨비불꽃’이라는 이벤트가 열리는데 액땜을 기원하는 불꽃축제가 함께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글·사진(노보리베쓰)=우현석객원기자
◇노보리베쓰 맛집 △후쿠안(福庵)=외국인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난 노보리베쓰의 맛집이다. 메인 메뉴는 수타메밀과 튀김 등으로 수타메밀은 만들어 놓은 물량이 떨어지면 판매하지 않는다. 새우튀김 덮밥(사진)도 훌륭하다. 영업시간은 오전11시30분~오후2시까지 점심시간과 오후6시~10시까지 저녁시간으로 나눠 문을 연다. 다다미 자리가 30석이 있다. 트립어드바이저에서 추천 맛집 1위에 오른 집이다. 인기 메뉴는 새우튀김 덮밥이 950엔, 그밖에 소바나 튀김세트 메뉴는 1,200엔 안팎이다. 국내에서 먹던 일식은 물론 일본의 다른 집과도 확실히 차별화가 되는 집이다. 전화:(0143)84-2758 주소:노보리베쓰 이즈미초30(登別 泉町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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