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일 대선 불출마를 전격 선언하면서 차기 대선 구도도 급격하게 출렁일 것으로 보인다. 범(汎)보수 후보로 여겨지던 반 전 총장의 중도 낙마로 여권 안팎에서는 보수 후보 단일화의 단초가 마련됐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동안 바른정당의 대선주자인 유승민 의원도 줄기차게 ‘보수 단일화론’을 주장해온 만큼 각 정당의 주자가 확정되면 후보 간 연대 논의에 탄력이 붙을 것이라는 얘기다.
우선 새누리당 지도부는 연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영입에 공을 들이고 있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황 대행이 10% 안팎의 높은 지지율을 보이면서 당 지도부와 친박계는 황 대행 영입에 대한 암묵적 합의를 이미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은 황 대행을 대선후보로 띄울 경우 ‘불임정당’의 오명을 떨칠 뿐 아니라 혹시 선거에서 패배하더라도 유의미한 정치 세력으로서 생명 연장을 도모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반 전 총장의 불출마로 인한 최대 수혜는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얻더라도 바른정당의 유승민·남경필 후보 등도 반 전 총장의 지지 세력 일부를 가져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유 의원의 경우 최근 언론 여론조사에서 반 전 총장을 꺾고 보수 진영 대선후보 적합도 조사에서 1위를 차지한 만큼 합리적 보수 세력의 대안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김민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안 전 대표가 가장 큰 수혜를 입고 보수 단일화론을 줄기차게 주장해온 유 의원도 일부 표심을 흡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런 가운데 반 전 총장의 불출마가 보수 단일화의 방아쇠를 당겼다는 관측이 제기되는 이유는 황 대행과 유 의원이 각자 품고 있는 가능성과 한계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우선 고만고만한 주자들이 경쟁하던 보수 진영에서 새로운 대항마로 급부상한 황 대행은 반 전 총장이 링을 떠나면서 여권 후보 가운데 지지율 1위로 올라섰다.
공안검사로 출신으로 투철한 안보관을 갖고 있다고 평가 받는 황 대행은 법조계와 기독교 등 한국 사회의 정통 보수세력들로부터 지대한 관심을 받고 있다.
다만 황 대행이 새누리당 후보로 대선에 나설 경우 ‘친박·극우’ 이미지가 강해 확장성에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경제학자 출신으로 연일 정책 공약을 내놓으며 다른 주자들과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는 유 의원은 반 전 총장은 물론 중도 진보 유권자들의 표심을 흡수할 잠재력이 충분하다. 차기 대선 국면에서 ‘정권 교체’가 이미 가장 강력한 프레임으로 자리 잡은 가운데 소신을 지키다가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계로부터 핍박을 받았다는 이미지가 쌓인 점도 유 의원으로서는 손해 볼 게 없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정치 이력 때문에 극우는 물론 보수의 본거지인 대구경북(TK)에서도 유의미한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는 점은 두고두고 한계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새누리당과 바른정당의 후보 간 연대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안철수 전 대표는 승패를 떠나 확고한 완주 의지를 여러 차례 내비친 가운데 보수 세력이 단일후보를 내는 데 실패하면 차기 대선은 다자 구도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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