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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 4.0시대-독일] 獨 정부는 '4차 산업혁명 조율자'

<8>선수 아닌 감독으로 뛰는 獨정부 리더십

'인더스트리 4.0' 구축해 신산업 준비 돕고

법률정비·근로개혁·디지털 인프라 조성도

표준화·전략수립 등은 기업 자율에 맡겨둬

독일 남부 블라이카흐에 있는 로버트보쉬 생산공장의 자동차 부품 생산라인에서 한 직원이 터치스크린 패널을 이용해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블룸버그




지난 1989년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기 전까지 옛 동독의 중심지였던 베를린 중심부의 알렉산더광장. 광장에 선 기자는 노트북으로 무작정 독일 4차 산업혁명의 현주소를 찾아 나섰다. ‘플랫폼 인더스트리 4.0’에서 제공하는 ‘인더스트리 4.0 지도(landkarte industrie 4.0)’에 접속하니 쉽게 ‘ESYS’라는 이름의 중소기업을 찾아낼 수 있었다. 블루투스 기술을 이용해 공장의 설비 상태를 추적하고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예방정비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스템을 생산하는 기업이다. 기업의 이름을 클릭하자 아직 시제품 단계인 시스템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함께 담당자 정보와 연락처까지 제공됐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독일 정부는 2012년 ‘인더스트리 4.0(industrie 4.0)’이라는 정책을 발표하며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인더스트리 4.0’은 독일이 강점을 가지고 있는 제조업을 기반으로 사물인터넷(IoT), 사이버 물리시스템(CPS) 등을 융합하고 한 단계 발전시켜 미래에도 산업 주도권을 놓지 않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다. 2015년에는 ‘플랫폼 인더스트리 4.0’에 정부·기업·학계·노동계 등 산업의 주체들이 모두 참여하는 형태로 확대해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논의를 사회 전반으로 확장해나가고 있다.

정부의 한발 앞선 비전 제시 덕분에 독일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제조업 선도국이라는 브랜드를 차지할 수 있었다. 유럽에서는 독일이 만든 인더스트리 4.0이라는 용어가 4차 산업혁명과 동의어로 쓰일 정도다.

물론 독일 역시 4차 산업혁명에 완전히 적응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지멘스·보쉬 등 대기업들과 달리 상당수 중소기업은 변화의 물결 속에서 아직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플랫폼 인더스트리 4.0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개념을 잡지 못한 기업의 비율은 절반에 가까운 47%에 달한다.





산업 패러다임의 대변혁기에 독일 정부는 기업과 노동자들을 위해 손에 잡히는 그림을 그려줌으로써 4차 산업혁명으로 향하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현재 268개 기업이 등록된 인더스트리 4.0 지도도 이러한 생각에서 출발했다. 지도를 열면 내가 사는 지역에 어떤 기업이 어떤 제품과 서비스로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고 있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이를 보면 자신이 가진 아이디어를 접목할 만한 기업을 찾거나 새로운 사업전략을 구상하기 위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독일산업협회(BDI)의 클레멘스 오테 4차 산업혁명 책임자는 “독일 정부는 4차 산업혁명의 개념을 기업들에 번역해주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이 지도는 인더스트리 4.0에 대해 알고 싶을 때 ‘출발점’이 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논의의 장인 플랫폼 인더스트리 4.0에서 나온 법률 정비, 근로 방식 및 교육제도 개혁, 디지털 인프라 조성 등을 실제 사회에서 이행하는 것도 정부의 몫이다. 다만 표준화, 구조조정, 전략 수립 등 기업이 해야 할 일은 철저히 기업이 하도록 남겨둔다. 4차 산업혁명 추진 과정에서 독일 정부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기업이 잘 뛸 수 있도록 뒤에서 조율하는 ‘감독’이다.

오테 책임자는 독일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정부 주도 산업정책이 유효하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이제는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그는 “정부가 해야 하는 역할이 분명히 있지만 기업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이 할 수 있게 놓아둬야 한다”며 “주체는 기업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를린=연유진기자 economicu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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