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새 한 해의 12분의 1이 지났다. 새해가 밝은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월이다. 이 세상에 가장 무서운 것은 시간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한다. 눈 한 번 감았다 뜨면 돌 던졌던 자리가 돌을 맞을 수밖에 없는 자리라는 것을 느끼며 몸서리치게 시간의 빠름을 절감하는 요즘이다. 그래서 한 번밖에 살 수 없는 빠른 인생에서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살아내야 할 것인가 깊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신약성경에 보면 예수께서 인생을 어떻게 사는 것이 지혜로운가 비유로 여러 번 설명하셨다. 그 중에 인상 깊은 비유의 하나는 누가복음 8장에 나오는 씨 뿌리는 비유다. 팔레스타인 지역의 농법을 보면 농부들이 손으로 직접 씨를 뿌리거나 심기도 하지만, 자기 허리나 가축들에 구멍 뚫린 자루를 매달고 씨를 뿌려야 할 곳을 지나가면서 자연스럽게 씨가 떨어지도록 파종한다. 또 먼저 씨를 뿌린 다음 땅을 갈아엎어 씨가 자라게 하는 방식으로 농사를 짓기도 한다. 이런 농사방식 때문에 파종한 씨앗들은 여러 종류의 땅에서 자라게 된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비유 속에는 모두 네 종류의 땅 위에 떨어진 씨앗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가장 먼저는 길가 밭이다. 길가 밭에 떨어진 씨앗은 길 위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발에 밟히다가 결국 새들이 와서 먹어버린다. 두 번째는 바위 위에 떨어진 씨앗이다. 이 씨앗 역시 싹이 나기는 하지만 습기가 없는 바위 위에 떨어진 터라 결국 말라 죽어 버린다. 세 번째는 가시밭에 떨어진 씨앗이다. 이 씨앗 역시 씨앗 보다 성장력이 강한 가시의 기운에 막혀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죽어버리고 만다. 마지막으로 비유 속에 등장하는 것이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이다. 이 씨앗만이 제대로 자라서 삼십 배, 육십 배, 백배의 결실을 낸다는 것이 예수께서 하신 비유의 요지다.
비유란 원래 여러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 그런데 예수께서 하신 씨 뿌리는 비유를 보면서 드는 한 가지 생각이 있다. 농부가 뿌린 전체 씨앗 가운데 좋은 땅에 떨어져 백배의 결실을 내는 경우는 4분의 1인 25%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머지 75%는 존재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낭비같이 느껴진다.
그러나 이 비유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아주 중요한 교훈이 있다. 열매 맺기를 소원하는 농부라면 100% 가운데 적어도 75%는 제대로 자라지 못해도 손해 볼 각오를 하고 일단 부지런히 뿌려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뭔가 새로운 열매 맺기를 기대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답은 단순하다. 실패할 확률이 75%나 되지만 기회를 얻는 대로 부지런히 씨앗을 뿌려야 한다는 얘기다.
요즈음 진로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이들을 자주 만난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앞길이 척척 열렸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원했는데 거부당하고 거절당한다. 얼굴을 보면 말이 아니다. 하지만 한 번 실패했다고 좌절할 것이 아니라 최소한 4번은 시도해 보고 좌절을 해도 좌절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는다.
사람들은 힘든 상황에 직면했을 때 ‘오기(五氣)’, 다섯가지의 기(氣)를 가지고 계속 시도하자는 말을 자주한다. 오기란 눈에 있는 총기, 얼굴에서 드러나는 화기, 마음에 품고 있어야 하는 열기, 몸에서 자연스럽게 풍겨 나오는 향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무리 어렵더라도 포기하지 않는 끈기다.
심는 것이 없으면 거둘 수 없다는 것은 자연이 가르쳐 주는 보편 진리다. 아무리 힘들고 눈물이 나더라도 열매를 거두고 싶으면 낙망하지 말고 당장 결과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부지런히 씨앗을 뿌려야만 한다. 이것이 빛의 속도로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품고 실천해야 할 지혜로운 삶의 자세다. 그래서 성경도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둔다”(시편 126:5)고 말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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