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대 팬텀싱어’로 등극한 포르테 디 콰트로(고훈정·손태진·김현수·이벼리)팀의 고훈정은 록을 사랑하는 성악 전공 뮤지컬 배우이다. 최근 대학로에서 만난 고훈정은 “저는 천재가 아니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해야 해요. 무대는 제가 너무 사랑하는 곳이고 예술인으로 평생 살고 싶으니까요.”라고 말했다.
지난 달 27일 ‘팬텀싱어’로 최종 낙점된 고훈정은 2016년 그 누구보다 바쁜 한해를 보냈다.
배우 고훈정은 뮤지컬 ‘팬레터’, ‘더 맨 인더 홀’, ‘비스티’, ‘천사에 관하여’ 그리고 연극 ‘Q’까지 연달아 작품에 출연하며 쉬지 않는 행보를 이어갔다. 지난 11월엔 예그린뮤지컬 어워드 신인상에 이어 공연 제작 및 배우 매니지먼트사 알앤디웍스와 전속 계약을 체결했다.
데뷔 7년만에 받은 신인상은 그에게 더욱 행복한 책임감을 안겼다. “상을 받자마자, 어디 가서 못난 모습 보이지 말고 무대에서 더 잘해야겠구나’ 생각이 먼저 들던걸요. ”라고 말문을 연 고훈정의 얼굴에선 그 어떤 달콤한 속삭임에도 흔들리지 않는 신념이 엿보였다.
국내 첫 크로스오버 남성 4중창 그룹을 뽑는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화제의 중심에 선 그이지만 그의 주 무대는 뮤지컬이다. 데뷔작은 2009년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으로 8년차 뮤지컬 배우. 현재, 창작뮤지컬 ‘더 데빌’ 준비에 한창인 고훈정은 조형균·임병근과 함께 X(엑스)-화이트로 나선다. 록 뮤지컬 ‘더 데빌’(연출 이지나)은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파우스트’를 뉴욕 증권가로 옮긴 작품.
앙코르 공연으로 돌아오면서, 2014년 초연 당시 한 사람이 연기하던 X(엑스)를 선악을 상징하는 화이트와 블랙 2명이 연기한다. 게다가 기존 넘버 중 70% 이상을 재편곡해서 선보인다. 작품의 매력은 2명의 X(엑스)가 단순히 선과 악, 2분법적으로 보여지지 않는다는 점. 인간 안에 내재된 다양한 감정을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번 작품으로 인해 ‘선과 악 그걸 누가 규정해줄 수 있나’에 대한 논의거리는 분명해질 듯
“화이트가 선, 블랙이 악이라고만 보기 쉬운데, 저게 과연 선일까, 악일까 질문을 던져준다. 배우들 역시 그렇게 접근하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관객 분들이 받아들이기에 따라 달리 보일 수 있는 게 이 작품의 무궁무진한 매력입니다. ”
인간의 선택에 의해서 ‘선’이 발현되느냐 ‘악’이 발현되느냐에 따라 극명한 평가가 뒤따르게 된다. 뮤지컬은 그렇게 흥미로운 지점들을 잘 건드리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시대에나 통할 수 있는 주제를 내포하고 있다.
“결국 ‘선택’의 이야기 일 수 있어요. 누구나 인간은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오잖아요. 하지만 그 선택의 선악을 누가 어떻게 구분할지? 거기에 대한 이야기거리들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요. 극 중 ‘화이트’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입장을 보이면서 그런 내용들을 건드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더 데빌’의 음악은 곧 이야기이고 캐릭터이며 인간의 욕망과 파멸이라는 주제 그 자체가 된다. 특히 라틴어와 성경, 희곡 파우스트를 인용해 눈길을 끌었던 ‘더 데빌’ 가사는 캐릭터의 상황과 심경의 변화 등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아름다운 클래식 선율과 강렬한 록사운드의 만남 역시 고훈정을 ‘더 데빌’로 이끌었다. 어린 시절 프레디 머큐리를 너무도 좋아했던 소년 고훈정, 성악을 전공한 청년 고훈정 모두의 컬러가 이번 작품에 담길 전망.
“넘버가 진짜 너무 좋죠. 초연 때 공연을 보진 못했고, 유투브 영상을 찾아봤어요. 들으면서 와~‘넘버가 내 스타일이네’ 그 생각이 먼저 들었을 정도로 좋았어요. 록부터 낭만주의 시대의 아리아도 있고 바로크 헨델시절의 고전음악도 있어요. 아리아를 하다가 록으로 전환되기도 하는데, 이런 모든 음악들을 불러 볼 수 있다는 게 행복해요.”
현재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연출 김동연)’에 출연중인 고훈정은 작품 속에서 비중이 크지 않은 ‘제임스’ 역을 맡았다. 이에 대해 몇몇 팬들은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고훈정은 ‘그게 왜 중요하냐’고 오히려 되묻는다. “제가 출연하는 비중이 초점이 아니라 작품 자체로 볼 요소가 많아요. 많은 관객들이 눈물 흘리면서 나갈 정도로 뭔가를 던져줘요.”라는 답을 내보였다.
그의 말대로 ‘어쩌면 해피엔딩’은 매진 행보를 이어가며, 대학로에서 꼭 한번쯤 만나야 할 뮤지컬로 불리고 있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슬픔의 근본을 건드리는 작품입니다. 인생의 결이 음악 안에 다 살아있어요. 특히 음악이 드라마를 다 담아내고, 선율로 감성을 자극하는 공연이라, 작품 자체가 주는 에너지와 정서가 대단해요. 배우는 주어진 텍스트대로 구현만 하면 될 정도로요. 이 공연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역사적으로 감사해요.”
음악과 함께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것에 익숙했던 고훈정은 최근 ‘만추’에 이어 연극 ‘큐’에 출연하며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리딩공연 ‘카라마조프’에도 참여했던 고훈정은 “음악과 판타지가 섞인 뮤지컬과는 또 다른 리얼타임 공연 경험은 특별했다”고 회상했다. 그 어떤 질문에도 논리적으로 말을 잘 풀어내는 그의 능력은 제 5공화국 시절 행해졌던 노골적인 언론통제 사건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연극 ‘보도지침’의 컬러와도 잘 맞을 듯 했다.
“연극 ‘보도지침’도 기회가 된다면 하고 싶었어요. 좋은 텍스트, 에너지 가득한 무대에서 정말 살아 있고 싶어요. 그런 역할을 꼭 해내고 싶죠. 연극 ‘큐’를 하면서 무대에서 온전히 캐릭터로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 시간을 노래의 도움 없이 리얼로 살아낸다는 게 공부가 많이 됐어요.”
매 순간 살아 있다는 것. 배우에겐 꼭 필요한 기량이지만 누구나 쉽게 할 수 없는 능력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고훈정의 강점은 “매 순간 살아있다는 점”이다.
“제 강점이요? 강점이 없는 사람이라 말 할 게 없는데... 글쎄요. ‘꾸준함’은 자신있게 말 할 수 있어요. 안되면 될 때까지 하는 걸 좋아합니다. 제가 너무 부족한 사람이라 연습 하는 것 밖에 길이 없더라구요. 노래를 하든 연기를 하든 매 순간 정확하게 살아내면서 제 몫을 다 해내고 싶어요. 그게 배우의 숙명 아닐까요.”
JTBC ‘팬텀싱어’에서 많은 이들이 그의 무대에 열광했지만, 그에게 관심이 쏠린 또 다른 이유는 훌륭한 리더십과 따뜻한 배려심에 있었다. 팬들과의 친근한 소통도 화제가 됐다. 고훈정은 같은 가수들, 기자 혹은 팬들과의 관계도 다르지 않다고 했다. 그의 이런 태도는 ‘스타’ 혹은 ‘배우’라는 이름으로 각을 잡는 여타의 배우들과는 달랐다.
“저도 뮤지컬은 물론 음악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좋아하는 가수나 음악을 찾아보는 것을 즐겨하는 성격입니다. 무대 위에 오른다고 해서 특별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제 음악을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동시대의 문화를 같이 즐기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함께 공유하고 이야기 나누는 게 너무 재미있어요.”
인터뷰 내내 흔들리는 않는 인간 고훈정의 뚝심이 보였다. 그의 뚝심이 많은 이들에게 행복 바이러스를 전파할 듯 보인다.
한편, 고훈정은 오는 3월 5일까지 DCF대명문화공장 2관 라이프웨이홀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에 이어 2월 14일 대학로에 위치한 드림아트센터 1관에서 개막하는 뮤지컬 ‘더 데빌’과 2월 24일 개막하는 뮤지컬 ‘비스티’(DCF대명문화공장 1관 비발디파크홀)에 출연 예정이다. 또한 ‘팬텀싱어’ 1위 특전인 전세계 동시 앨범 발매와 전국 투어 단독 콘서트로 팬들에게 달콤한 만남을 예고하고 있다.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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