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년 조선의 22대 임금 정조대왕이 붕어한다. 순조가 이듬해 11세의 나이로 임금에 오르자 정순왕후(영조의 비)가 수렴청정하며 외척의 세도정치가 시작된다. 34년 뒤인 1835년에는 헌종이 8세의 나이에 왕위에 오른다. 조선은 외척의 세도정치가 계속된다. 이때 국제정세는 바야흐로 ‘서세동점’의 시대가 본격 시작됐다. 1839년 ‘아편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당시 영국은 청나라에서 도자기·비단·차 같은 물품을 수입해 막대한 무역적자를 보고 있었다. 무역적자 해소를 위해 영국은 자국에서 금지한 아편을 청나라에 밀수출해 비양심적으로 수지를 맞췄다. 청나라가 반발하자 소위 전쟁을 일으켰고 승리해 홍콩을 할양받고 상하이 등의 해안도시를 개항시켜 입맛대로 무역하고 수익을 챙긴 것이다. 작은 섬나라에 아시아 최강국이 패배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청나라의 패전으로 일본은 위기감 속에 서양을 맞는다. 15년 뒤인 1854년 미국의 매슈 페리 제독이 군함 7척을 이끌고 다시 찾아오자 ‘미일 화친조약’을 맺고 시모다와 하코다테를 개항한다. 이어서 다른 서양 나라들과도 조약을 맺으며 개항해나간다. 규슈 남쪽의 사쓰마 번과 혼슈 서쪽의 조슈 번이 개항에 반대하고 나섰다. 이들은 처음에는 개항에 반대해 쇄국을 주장했지만 점차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개국만이 살길임을 깨닫고 ‘에도막부’를 무너뜨려 800년 가까이 정치권력에서 멀어진 천황을 옹립해 개항 14년 후인 1868년 ‘왕정복고’를 선언한다. 왕으로 옹립된 메이지 천황은 교토를 떠나 에도(지금의 도쿄)로 향한다. 도쿄는 일본의 수도가 되고 막부를 타도한 새 지도층은 ‘문명개화’와 ‘부국강병’이라는 정책목표를 세워 일본을 본격적으로 바꿔나간다. 이른바 ‘메이지유신’이다.
이때부터 일본은 서양문물을 급속히 받아들인다. 소학교 교육을 의무화하고 공교육을 강화한다. 해군과 육군을 창설하고 징병제를 실시한다. 1871년에는 메이지유신의 핵심 멤버 48명이 ‘해외탐방사절단’을 꾸려 미국으로 출발한다. 미 대륙을 횡단하는 기차를 타고 워싱턴DC에 가 율리시스 그랜트 대통령을 만난다. 일본에 돌아와 먼저 시도한 산업이 철도 부설이 된 이유다. 사절단은 다시 대서양을 건너 영국으로 가 산업혁명이 한창 이뤄지는 현장을 체험한다. 프랑스·벨기에·네덜란드를 거쳐 독일로 향한다. 독일에서 철혈재상 비스마르크를 만난다. 통일을 막 이룬 독일의 ‘부국강병’ 정책을 보고 일본의 근대정부 모델로 적합하다고 판단한다. 1년9개월에 걸쳐 지구를 한 바퀴 돈 이들의 현장 체험은 일본 근대화의 원동력이 됐다. 메이지유신을 시작한 지 20여년이 지난 1889년 ‘메이지헌법’이 만들어지고 선거가 치러지고 국회가 개설된다. ‘입헌군주국가’의 면모를 갖춘 것이다.
하지만 조선에서는 나무꾼으로 살아온 철종, 명색만 왕족인 흥선대원군의 둘째 아들 고종으로 재위가 이어지고 섭정이 계속된다. 서세동점의 거대한 흐름이 휘몰아치는 한가운데서 조선은 외척의 세도정치나 섭정으로 정치지도력의 좌절이 이어졌다. 급속히 산업혁명에 나선 일본은 1876년 ‘강화도조약’으로 조선을 개항시키며 한반도로 진출해 대륙 점령의 야망을 펼쳐나간다. 독립협회와 백성들의 요구에 못 이겨 러시아공사관에서 경운궁(덕수궁)으로 환궁한 고종은 입헌군주체제를 강력히 주장하는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를 군대로 강제해산시킨 후 전제군주제의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로 즉위한다.
조선의 고종과 일본의 메이지는 1852년 동갑내기다. 고종은 11세에 즉위해 아버지인 대원군의 섭정을 받았으나 성인이 된 후에는 독자 집정을 했다. 메이지는 14세에 즉위해 귀족·영주들의 후견을 받았으나 그 후에는 ‘유신개혁파’의 후견을 받았다. 19세기 말엽 서세동점의 시대 서양의 침입과 새로운 문물이 밀려 들어왔을 때 국가의 최고 지도자가 국제정세의 변화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냉철히 성찰해봐야 한다. 정치지도자는 국내외의 요구와 변화를 끊임없이 통찰하고 오직 국가와 백성을 위해 솔선수범하는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 정치지도자의 지도력이 나라를 흥하게 하고 망하게도 한다는 역사적 교훈을 우리나라 정치지도자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김진수 선비리더십 아카데미 회장·전 현대차 일본법인 대표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