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대기업 중심의 경제성장 전략을 펼쳤던 과거와 달리 제19대 대선에서는 앞다퉈 국민소득을 늘려 내수를 살리고 4차 산업혁명을 이끌 스타트업·중소기업을 지원하는 공약이 나오고 있다. 저성장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새로운 경제구조를 모색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대부분의 대선주자들이 공감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선을 앞두고 ‘국민성장’ ‘공정성장’ ‘혁신성장’ 등 각종 성장 담론이 대선주자들의 입에서 나오고 있지만 막상 학계에서는 현실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집권 후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생각하지 않은 채 당장의 표심에만 반응하는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소득 늘려 경제성장? 앞뒤 바뀌었다=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재명 성남시장이 대표적으로 주장하는 소득주도 성장은 평가가 엇갈린다. 이는 가처분소득을 늘려 소비로 이어지게 하면 내수가 살아나고 경제가 활성화되는 선순환 구조를 의미한다. 문 전 대표는 이를 위해 대기업·고소득층을 중심으로 조세개혁을 하고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를 줄이는 등 세출을 조정해 소득 증대의 기반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이 시장은 지난 1930년대 미국 대공황 해법이었던 뉴딜정책을 ‘한국형’으로 변화시키겠다고 밝혔다. 대기업 증세 등을 통해 확보된 예산을 개인에게 투입해 경제를 살리겠다는 전략이다.
기업소득에 비해 가계소득 증가율이 미미했다는 점에서 소득주도 성장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는 목소리가 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예산정국에서 법인세 최고세율 인상 여부를 두고 여야가 끝없는 대립을 거듭하다 유지를 선택하는 등 증세는 민감한 주제다. 소득증대가 경제성장으로 이어질지 여부가 미지수라고 평가하는 목소리도 있다.
특히 소득증대와 경제성장의 선후관계가 잘못됐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조장옥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경제성장이 돼야 소득이 많아지는 것인데 소득주도 성장 자체가 말이 안 된다”며 “애매모호한 단어로 표를 잡기 위한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와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은 ‘창업’을 강조하고 있다. 안 전 대표는 공정한 경쟁의 토대 위에서 창업이 활성화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유 의원 역시 ‘혁신성장’ 정책으로 정책자금 연대보증 폐지와 투자환경 조성 등을 통해 ‘창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내걸었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 한 경제통 의원은 “한국이 4차 산업혁명에서 상대적으로 뒤처져 있는 만큼 창업을 활성화시키는 것은 중요하다”면서도 “정부 지원에 안주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에서 자율적으로 생태계를 만들어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만 스타트업 이후 중견기업에서 대기업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사다리를 놓는 방안이 제시되지 않은 점은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최근 지지율이 급상승한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경우 녹색성장과 창조경제 등 역대 정부의 나름의 공과를 평가하면서 각각의 장점을 이어받겠다는 기조를 갖고 있다. 5년마다 경제 방향을 이리저리 휘두르지 않고 안정적인 흐름을 이어가겠다는 복안이다. 하지만 저성장이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돌파구를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경기도의 사례를 바탕으로 공공 플랫폼을 민간에 개방에 신성장동력을 창출하겠다고 밝혔다.
◇공공일자리 81만개? 재정은 나 몰라라=청년 실업이 심각해지면서 청년층 표심을 잡기 위한 일자리 공약이 핵심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일단 가장 논란에 휩싸인 공약은 문 전 대표의 ‘공공 부문 일자리 81만개 창출’이다. 문 전 대표는 공공 부문 81만개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50만개를 만들어내겠다고 내세웠다.
이는 즉시 대선주자들에게 공격의 대상이 됐다. 안 지사는 “세금을 걷어서 공무원 숫자를 늘린다? 그것만 가지고 우리가 바라는 일자리가 다 충족되기는 어렵다”며 ‘임시방편’이라고 비판했다. 유 의원도 “현재 공무원 숫자가 100만명인데 앞으로 5년 안에 100만개 가까이 또 만드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소방관과 경찰, 복지공무원의 경우 수요에 비해 숫자가 부족해 확대 필요성이 인정된다. 다만 재원 마련이 어떻게 이뤄질지 불분명하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우리나라가 선진국보다 공공 부문 일자리 비율이 낮아 늘려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인건비로 쓰는 예산을 비교하면 적지 않다”고 말했다. 공무원 연금 등 부수 비용까지 계산하면 연간 수조원의 추가 예산이 필요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에 대해 문 전 대표는 “일자리를 늘리는 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 전 대표와 이 시장이 함께 주장하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도 한계를 지닌다. 이 시장은 근로시간 준수, 연장근로수당 지급 등을 통해 일자리를 최대 269만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조 교수는 “추가 근로를 안 하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존 월급을 유지해야 할 텐데 그 상황에서 생산비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추가 고용을 기업들이 하겠냐”라고 반문했다. /권경원기자 nahe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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