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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트럼프가 100명 있어도 미국이 중국보다 낫다"

손철 뉴욕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20일 만에 ‘설마’ 했던 공약들을 일사천리로 실천하며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리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호주·베트남·싱가포르 등 11개국과 연합해 끝까지 지켜보려 했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트럼프 대통령은 미련없이 탈퇴를 선언하고 이행작업까지 마쳤다. 최대 우방이던 캐나다·멕시코에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을 통보하고 5월부터 협상을 하기로 했는데, 벌써 미국 측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나프타를 폐기할 것이라고 위협하고 있다. 멕시코에는 국경 장벽 건설을 강행하겠다면서 비용도 모두 멕시코가 부담하라고 해 트럼프 정부 출범 후 양국 간 첫 정상회담이 취소되기도 했다.

세계화와 자유무역에 향도 역할을 해온 미국이 등을 돌리자 중국이 그 빈자리를 채우겠다는 야심을 키우고 있다. 중국은 TPP에 대항해 추진해온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띄우며 자유무역 수호자라는 이미지를 심으려 나서고 있다. 세계는 주요 2개국(G2)으로 성장한 중국의 위상과 트럼프에 대한 반감으로 적잖이 중국에 기대를 거는 듯하다. 줄리 비숍 호주 외무장관은 지난 7일 캔버라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을 만나 “미국이 빠진 TPP에 중국이 참여해달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세계 최고의 보호무역국가는 중국이다”라는 윌버 로스 미국 상무장관 지명자의 발언을 새삼 들추지 않더라도 잠시만 중국의 실체를 따져보면 “중국이 자유무역의 기관차가 되겠다”는 신기루 같은 주장의 허구성을 알 수 있다. 사회주의국가로 공산당이 정부는 물론 사법부와 입법부 위에 있고, 언론 자유는 사실상 막혀 인터넷 이용조차 선별적으로 이뤄지는 중국이 개방과 자유무역의 선두에 서는 것이 가능할까. 근본적 회의감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마침 한국은 주요 무역국 중 유일하게 미국·중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고 있는데, 한미FTA와 비교하면 한중FTA는 “자유무역의 ㅈ(지읒)자도 꺼내기 민망할 만큼 수준이 낮다”는 것이 무역업계와 통상 관료들의 공통된 평가다. 더욱이 안보 문제인 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를 두고 중국이 교묘하게 한국산 화장품 수입 불허조치를 내리고 한류 스타들의 현지 공연이나 방송 출연을 막는 것도 모자라 국내 기업의 현지법인들에 세무조사와 위생 검열 등을 벌이는 행태를 보면 도저히 FTA를 맺은 파트너 국가라고는 믿을 수 없다. 조폭 같은 중국의 보복 조치에도 외교 채널 등을 통해 변변한 항의조차 못하고 눈치만 살피는 정부도 딱하지만 비난의 화살은 먼저 중국을 향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웃사촌으로 엄청난 부담과 동시에 최고의 기회를 제공하는 중국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할 생각은 없다. 그럼에도 보호무역의 목청이 커지는 미국과 이를 준엄히 꾸짖는 중국을 보면서 G2 통상장벽의 실질적 키 높이를 따져보는 것은 트럼프 정부가 한국에도 FTA 재협상이나 환율조작 위협을 꺼내 들 때 냉철한 대응이 긴요하기 때문이다. 무슬림 7개국 출신 입국 금지처럼 국제사회의 보편적 가치를 깔아뭉개고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에 매몰된 행정명령으로 세계 각국이 트럼프를 향해 온갖 비판과 욕을 퍼붓고 있지만 그것이 미국을 평가하는 전부여서는 곤란하다. 대통령 트럼프의 잘못된 행동을 견제하고 제동을 거는 미 의회와 법원, 따끔한 비판을 멈추지 않는 기업과 언론의 존재 등을 다각적으로 살펴봐야 한반도를 사이에 두고 닥쳐올 미중 간 외교·통상 전쟁의 파고에서 한국이 중심을 잃지 않을 수 있다.

전 세계 여론의 비판과 쓴소리가 트럼프의 미국을 향하는 가운데 중국이 미국을 대신해 ‘팍스시니카’나 ‘차이나 드림’을 실현하고 진정한 지구촌 대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싶다면 ‘자기 희생’은 어렵더라도 꼼수나 위선적 행태는 지양해야 한다. “트럼프가 100명이 있어도 미국이 중국보다 낫다”는 얘기는 비단 한국에서만 나오는 말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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