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0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미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대한 미국 측의 노골적인 요구를 차단하기 위해 양국 정권의 2인자가 주축이 되는 최고위급 경제협의체를 선제적으로 제안할 예정이다. ‘양국 간 새 무역투자의 근간을 만든다’는 명분과 ‘미국 내 일자리 창출’이라는 실리를 앞세워 미국과의 FTA라는 ‘최악의 수’를 피하겠다는 것이다.
9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과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을 좌장으로 하는 새로운 미일 최고위급 경제협의체를 제안할 방침이다. 양국은 이 협의체를 통해 지적재산권 보호, 원산지 규제, 국영기업 규제, 전자상거래 등 각 통상 분야에서 자율성이 보장된 공동의 규범(rule)을 만드는 데 주력한다는 것이 일본 측 구상이다.
사회 인프라 정비와 인공지능(AI), 우주개발 등의 분야에서 협력을 모색하는 역할도 협의체가 맡을 것으로 보인다. 신문은 미국의 탈퇴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발효가 차질을 빚는 상황에서 미일 양국이 새로운 통상규칙을 수립해 이를 장차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공통 규범’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례적으로 2인자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내주는 이번 전략은 돌출발언을 일삼는 트럼프 대통령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내 일자리를 없앤다”는 말로 일본이 수년간 공들였던 TPP를 단번에 휴짓조각으로 만들 정도로 철저한 ‘미국 우선주의’를 고집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본은 상대적으로 예측 가능하면서도 실리적 대화가 가능한 펜스 부통령과 정례적으로 만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향후 불거질 무역마찰을 최소화하려 하고 있다.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정상급 회담보다 실무진이 모인 자리가 협의 진척에 수월하다는 점도 부총리급으로 협의체를 꾸리려는 이유로 꼽힌다.
아울러 새 경제협의체라는 새로운 카드를 던져 미국과의 양자 간 FTA 협상에서 시간을 버는 동시에 이번 정상회담에서 빈손으로 돌아오는 사태를 피하려는 의도도 담겨 있다. TPP 협상에서 자국 농축산물 시장을 보호 가능한 수준으로 통상교섭을 마친 일본은 트럼프 정부와의 양자 간 무역협정에서 보다 강력한 시장개방 압력을 받는 일만은 피하고 싶은 입장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도 이번 최고위급 경제협의체 구상을 “FTA 교섭을 회피하려는 속셈”이라고 평했다. 다만 전미육우생산자협회(NCBA) 등이 이미 미 백악관에 “일본과 FTA 교섭을 시작하라”고 압박하고 있어 미국이 일본 측 구상에 호응할지는 미지수다.
9일 미국 방문길에 오른 아베 총리도 정상회담에서 경제협력을 기반으로 미-일 동맹을 강화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이날 그는 하네다 공항에서 미국행 비행기를 타기 전 기자들과 만나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미-일 동맹관계가 한 층 더 견고해지리라고 믿는다”며 “특히 양국의 경제협력은 지금까지와 같이 앞으로도 윈윈하며 발전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수민기자 noenem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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