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인터뷰 질문에 겸손함을 보이는 배우 지창욱이 자신을 칭찬했다. 바로 ‘스스로 배우가 되기로 마음 먹은 일’이다.
최근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지창욱은 “성향 자체가 겁도 많고, 조심성도 많아서 지극히 평범한 성격인데, 이렇게 배우란 직업을 선택했기 때문에 더 노력하게 되고, 신선한 자극을 경험하게 되는 순간이 더 많아 좋다.”고 말했다.
그의 선택이 있었기에 우리는 맑은 배우 지창욱의 연기를 드라마와 스크린을 통해 만날 수 있게 됐다.
드라마 [기황후], [힐러], [THE K2] 등 다양한 작품을 통해 아시아를 사로잡은 지창욱이 데뷔 약 10년 만에 도전해 첫 스크린 주연에 나섰다. 사실 지창욱이 이번 작품을 결정하기까지 쉽지는 않았다고 한다. 게임과 현실을 접목시킨 영화라는 요인 외에도 스크린 첫 데뷔작인데다 원톱 주연이라는 점이 부담감을 안겼다.
“출연 제안을 받고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어요. 무엇보다 과연 내가 주연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컸어요. 하지만 박광현 감독님을 만나 대화를 나눈 뒤 작품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생겼어요. 감독님만의 색깔아 ‘조작된 도시’와 만나 재밌는 작업이 될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그의 선택은 제대로 통했다. 와이어 액션과 카체이싱, 건물 3층 높이에서 뛰어내리는 하강 레펠과 360도 회전 총격신 등 고난도 액션을 직접 소화해내는 것은 물론. 캐릭터의 복잡한 내면의 감정까지 완벽히 표현해내며 충무로의 떠오르는 배우로 점쳐졌다는 후문이다.
영화는 특별히 내세울 것 없었던 사회의 낙오자들이 모여 자신만의 숨겨진 재능과 장기를 발휘해 사건의 실체를 파헤치고 그 배후에 있는 거대 권력에 맞서는 과정을 그린다.
지창욱은 온라인 게임 내에서는 ‘게임계의 신(神)’으로 통하는 ‘권유’ 역을 맡았다. 전직 태권도 국가대표인 ‘권유’는 실제 현실에서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무일푼의 평범한 20대 백수 청년이다.
평범한 인물인 ‘권유’ 역 지창욱이 조작된 세상을 뒤집기 위한 짜릿한 반격에 나서기 시작하면 관객들의 공감지수는 높아진다. 단순히 처절한 복수로 점철되는 게 아닌, 작은 힘이 모여 거대 권력을 이겨낸다는 점이 함께 세상을 전복시키는 카타르시스를 안기게 한다.
박광현 감독은 “불행하게도 이 시대를 살면서 힘없는 사람들이 너무 쉽게 희생당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피부로 와 닿는 이야기라 관심이 갔다.” 며 “세상 끝에 버려져 있을 때 내 손을 잡아준 누군가가 있었고 그들과 함께 작은 힘을 모아서 멋지게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며 현실에 빗대어 상상력을 펼치게 된 계기를 밝힌 바 있다.
이 신선한 범죄액션물을 지창욱은 간략하게 “비주류의 사람들이 권력자들과 싸우는 이야기이다”고 소개했다. 지창욱이 천상병 시인의 ‘나무’를 내레이션으로 들려주는 장면은 영화 시작과 마지막을 장식하며 화려하진 않지만 잔잔한 ‘희망’의 기운을 전파한다.
“영화 속 인물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인데 이들을 비주류라고 생각하고 싶진 않아요. 무일푼 백수, 초보 해커, 특수효과 말단 스태프 등 그들을 비주류라고 바라보는 게 너무 안타까워요. 평범한 인물들이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권력과 세상에 맞서는데 촬영하는 내내 먹먹함이 있었죠. ‘조작된 도시’에서 억울한 일을 당한 이런 안타까운 이야기를 유쾌하고 희망적으로 풀어냈어요. 이 점이 저희 작품의 매력이기도 해요. “
액션 연기의 일인자로 평가받는 지창욱이지만, 전작 [THE K2]와 비슷한 액션 연기를 선 보이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는 ‘새로운 연기 변신’에 대한 고민은 가져가지만, ‘조작된 도시’와 작품은 물론 캐릭터적으로 차별화된 지점이 있음을 언급했다.
“배우마다 다양한 얼굴이 있어요. 물론 대중들도 다양한 입장 차이가 있겠죠. 배우가 이 작품이 끝이 아닌데, 매번 새로운 걸 보여달라고 하세요. 이제 제 나이 서른이 됐는데, 매번 다양한 연기를 원하세요. 거기에 대해서 전 ‘천천히 생각할래요’ 라고 말하고 싶어요. ‘천의 얼굴’이란 수식어도 좋겠지만, 억지로 새로운 걸 찾아서 보여드리고 싶지는 않아요. 시간이 자니면 아직 대중들에게 보여주지 않은 저의 여러 가지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 줄거라 생각해요. 거기에 대한 기대감도 분명히 있어요. ”
지창욱이 가는 길은 분명했다. 스스로 “귀가 얇아요. 그래서 더 흔들리지 않으려고 해요.”라고 말하는 그의 모습에선 일희일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일을 하면서 느꼈던 건 ‘배우가 흔들리는 건 좋지 않다’ 였어요. 사람들 입이 열 개면 열 개 다 다르게 평이 나와요. 그렇게 다른 하나 하나의 평에 신경을 쓰다 보면 정작 내 색깔이 없어지지 않을까요. 대중을 외면하는 건 아닌데, 분명히 내 색깔을 추구하고 나만의 길을 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를 더욱 발전하게 하는 건 배우로서의 자존심과, 팬들의 변함없는 사랑에 있었다. 이는 곧 작품에 임하는 자세로 직결된다.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고 싶다’는 당당한 배우 지창욱은 “절 좋아해주시는 분들 앞에선 좋아해주시기에 연기적으로 더 부끄럽지 않고 싶다”고 말했다.
“연기를 잘 하고 못하고의 차이를 떠나서 작품에 임하는 자세가 좋은 연기를 만들어요. ‘최선을 다했냐?’란 물음에 스스로 ‘YES’라고 답할 수 있어야죠. 제가 봤을 때 배우의 마음가짐에 따라서 차이는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100가지 장면이 있다고 했을 때, 다 정성을 들여서 찍기 쉽지 않을 때가 있어요. 배우도 사람이니까요. 가끔 체력적인 한계에 부딪쳐 현실과 타협 할 때가 있어요. 그런데 모니터를 보면 여지 없이 제 눈에 들어와요. 그냥 지나가는 신이라 관객들은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런 것들이 쌓여서 배우의 디테일이 나오는 것 같아요.
명확하게 관객들이 알아보거나 하는 건 아닌데, 전체적인 완성도 면에선 차이가 나는 것. 그게 바로 배우의 자세이죠. 이런 점을 더 마음에 담고 하고 싶어요. 매 작품마다 더 열심히 임하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말 할 수 있어요.“
배우 지창욱이 평가한 인간 지창욱은 “자유로운 영혼이고 싶은 소년”이다. 여기에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 하는 역마살도 있다고 한다. “나이 들어도 철 들지 않는 순수한 소년이고 싶어요. 그런 마음으로 한 해 한 해 나이 먹고 싶어요.”
‘소년 지창욱’에 한가지를 더 추가해야 할 듯하다. 바로 ‘효자 지창욱’이다. ‘효자 지창욱이란 소문이 들리더라’ 란 질문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소문이 아니고, 전 효자입니다. 효자.”라고 말 했으니 말이다.
“매일 매일 어머니를 많이 생각하구요. 어머니가 저한테 의지를 하세요. 어머니랑 살다보면 싸우기도 많이 하는데, 안 그랬던 어머니가 제 눈치를 볼 때가 있어요. 그 때마다 어머니가 많이 약해진 것 같다. 그러니까. 내가 잘 해야겠다란 생각을 해요. 어머니가 어렸을 때 제 뒷바라지 하시면서 고생을 많이 하시고, 배우 되겠다는 아들 때문에 마음 고생도 많이 하셨는데, 효자 아들로 웃으실 수 있어야죠.”
인터뷰 후, 자신의 몸집만한 커다란 강아지를 안고 나가는 지창욱의 뒷모습이 든든해 보였다.
지창욱이 온 마음과 몸으로 공들인 영화 ‘조작된 도시’는 개봉 첫날인 2월 9일(목) 157,668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1위에 등극했다.
특히나 개봉 첫날 스코어인 157,668명은 설 연휴 극장가를 사로잡으며 올해 최고 흥행작으로 등극한 <공조>의 첫날 스코어인 151,845명을 비롯 박광현 감독의 전작으로 800만 관객을 동원한 <웰컴 투 동막골>의 첫날 스코어인 135,991명을 넘어선 기록으로 눈길을 끌었다.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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