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대선출마자는 자신이 당선되면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공약이던 녹색성장과 창조경제를 계승해 ‘제대로 실천’하겠다고 했다. 이 두 가지는 전 정권들의 문제와 연관돼 부정적 인식이 많기 때문에 논란 가능성이 큰 발언이었다. 그런데 정책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것이 문제라는 상황인식에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좋은 정책이 정확한 이해도 없이 선거구호로 사용되거나 일부 세력에 의해 농단 당하면서 제대로 실천도 못해보고 표현 자체가 부정적으로 인식됐다는 것이다. 과거에도 동북아 허브, 생산적 복지, 동반성장 등 좋은 개념들이 특정 정권의 문제와 연관돼 사장된 적이 있다.
우리 정치권의 문제 중 하나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가경영의 틀 자체를 너무 쉽게 바꾸는 것이다. 기존 정부부처를 없애거나 새로운 부처를 신설하는 것이 정권교체기의 관례처럼 돼버렸다. 조직과 제도설계가 전공인 필자가 봤을 때 전문성과 효율성·책임의식·안정성, 예측 가능성의 기반을 뒤흔드는 아마추어적인 발상이다. 실제로 공무원들은 5년마다 부처가 생기거나 없어지기 때문에 일을 파악하는 데만 최소 1, 2년이 소요되고 이해할 만하면 또 없어지기 때문에 전문성 축적은 기대하기 힘들다고 한다. 최근 각종 재난이나 비상상태에 대한 정부대응이 부실한 이유 중 하나다. 이런 상황에서 부정적 인식이 강한 전 정권의 핵심 정책들을 계승해 실천하겠다는 발언은 신선하게 들린다.
필자는 창조경제라는 표현을 가장 먼저 사용한 사람들 중 하나다. 2000년대 초반부터 필자는 각종 강의와 글을 통해 우리나라의 성장모델을 20세기형 산업경제로부터 21세기형 창조경제로 서둘러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지난 대선 때 창조경제는 선거 한 달 전 갑자기 박근혜 후보의 선거 캠페인에 등장했는데 창조경제의 진짜 전문가들이 봤을 때 현 정부는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혼란만 거듭하다 이 중요한 정책이 사장될 위기에 빠뜨렸다. 현 정부에서는 창조경제를 초기에는 정보통신기술(ICT)에, 후기에는 문화에 집중하다 이 중요한 개념을 과도하게 축소시켜버렸다.
필자가 주장해온 창조경제는 20세기 산업경제에 대비되는 21세기형 경제를 뜻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산업경제는 19세기 말 등장해 20세기 초 미국 자동차왕 헨리 포드의 대량생산혁명으로 완성됐다. 생산량이 부족하고 가격이 비싸 대다수 소비자가 구매할 수 없을 때 산업경제의 선구자들은 대량생산을 통해 불과 10여년 만에 가격을 10분의1로 떨어뜨리고 생산량을 수백 배 늘리는 인류역사상 유례없는 생산성 혁명에 성공했다. 그 후 20세기형 산업경제는 지난 100여년간 세계 경제의 성장을 주도했는데 우리나라는 1960년대에 뒤늦게 시작했으나 빠른 추격자 전략으로 산업경제형 성장에 성공했다.
그런데 2000년대 초반을 기점으로 글로벌 경제의 규칙이 100여년 만에 또다시 바뀌고 있다. 이제는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상품과 가치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상시 창조적 혁신’이 새로운 규칙이므로 21세기형 경제를 창조경제로 부르는 것이다. 친환경 녹색성장이나 바이오혁명, 4차 산업혁명은 모두 상시 창조적 혁신을 가능하게 하는 21세기형 창조경제의 기반 기술들이다. 역사적 대전환의 과정에서 코닥·모토로라·제너럴모터스(GM)·시어스·노키아 등 산업경제의 대표 기업들이 최근 대거 몰락하고 창조경제를 선도하는 구글·아마존·페이스북·애플·테슬라 등 신생 기업들이 급부상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20세기 산업경제의 덫에서 못 벗어나고 가격·규모·모방에 집착하고 있다. 이제 그동안 우리 경제의 성장을 뒷받침해왔던 산업경제에서 벗어나 21세기가 요구하는 ‘진짜 창조경제’로 대전환이 시급히 필요하다. 산업경제가 처음 등장했던 19세기 후반 일본이 새 시대의 개막을 읽고 산업국가로 전환해 강대국의 반열에 오른 반면 우리와 중국은 기존 봉건왕조의 틀을 유지하며 부분적 개혁을 추진하다 나라를 잃어버렸다. 100여년 만에 또다시 그런 대전환기가 도래한 것이다. 따라서 정권이나 정파에 상관없이 국가의 생존을 위해 ‘진짜’ 창조경제로의 대전환을 서둘러 실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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