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핵심 타깃으로 하는 상법개정안이 2월 임시국회에서 일부 처리될 것으로 알려지면서 재계에 비상이 걸렸다. 가뜩이나 여야 대권 주자들이 ‘재벌개혁’을 구호로 외치면서 경영환경 위축이 우려되는 가운데 전자투표제와 다중대표소송제, 감사위원 분리선출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상법개정안이 통과되면 산업계 전체가 외국 투기자본의 위협에 무방비로 노출될 것이라는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서울경제신문은 국회에서 논의 중인 상법개정안의 쟁점과 문제점을 정리해봤다.
①감사위원 분리선임=현재 국회에 계류된 상법개정안의 내용 가운데 재계에서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 감사위원 분리선출이다. 현행 상법은 이사를 일괄적으로 선출한 후 이들 가운데 감사위원을 뽑도록 하고 있다. 감사위원을 선출할 때는 의결권이 최대 3%로 제한되지만 이사 선임 때는 별도 제한이 없다. 하지만 개정안에 따르면 감사위원은 처음부터 별도로 선출하고 이 단계부터 대주주는 3%까지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 경우 우리 기업 지배구조의 취약점을 호시탐탐 노리며 단기 차익을 꾀하는 외국계 헤지펀드들이 연대해 감사위원 자리에 그들이 원하는 사람을 꽂아넣기가 수월해진다. 일례로 현재 삼성물산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17.2%),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5.5%), 이서현 삼성물산 패션 부문 사장(5.5%), 삼성전기(2.64%) 등이 주요 주주다. 삼성물산의 이들 특수관계인과 주요 계열사의 총 의결권은 39.4%인데 감사위원 분리선임 조항 도입으로 오너 일가의 의결권이 3%로 제한되면 이 수치는 약 20.1%로 뚝 떨어진다.
2.9%의 지분을 가진 헤지펀드 7곳이 손을 잡으면 이사회를 장악해 우리 기업의 경영에 실질적인 위협을 가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재계 관계자는 “해외 선진국 중 감사위원을 분리선임하거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나라는 하나도 없다”며 “이 방안이 시행되면 자회사 지분을 상당수 보유한 지주회사에 심각한 폐해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②전자투표제 의무화 및 다중대표소송제=소액주주의 권리 향상을 핵심으로 하는 전자투표제 의무화와 다중대표소송제는 여야가 이미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기로 의견 접근을 이룬 조항이다.
앞서 국회는 지난 2009년 상법개정을 통해 주주가 주총에 출석하지 않아도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전자투표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이사회 결의로 시행 여부를 정할 수 있도록 한 규정 때문에 실제 이용률은 저조하자 여야가 일정 규모 이상인 상장사는 제도 도입을 강제하는 방안을 들고 나온 것이다. 이에 대해 재계는 “소액주주의 주총 참여가 급격히 증가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전자투표제를 도입한 국내 기업에서 실제 전자투표로 행사된 주식 비율은 1%대에 불과했다”며 “의무화 조치는 오히려 기업에 비용 부담만 떠안기는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와 함께 상법개정으로 다중대표소송제가 도입되면 우리 기업들이 소송 남발에 따른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모험적인 투자를 꺼리면서 결과적으로 글로벌 무대에서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다중대표소송제는 모회사의 소액주주가 자회사 경영진을 상대로 경영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여야는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역시 2월 처리에 사실상 합의했으나 다중대표소송을 인정할 모회사의 자회사 지분율을 놓고 새누리당(100%), 더불어민주당(50%), 국민의당(30%) 등이 막판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재계에서는 새누리당 안대로 모회사가 지분 100%를 가진 자회사에만 허용할 경우 산업계 전반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고 분석한다. 이웃나라인 일본도 이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③집중투표제 의무화 및 사외이사 선임규제 강화=야권은 9일 여야 수석부대표 회동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한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사외이사 선임규제 강화 등도 함께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선 집중투표제는 두 명 이상의 이사를 선임할 때 특정 후보에게 의결권을 몰아줄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이미 도입돼 있는 방식이지만 현재는 회사 정관을 통해 배제 가능하다. 재계는 “1주 1의결권의 시장경제 원칙을 훼손하고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무방비로 노출될 위험이 높다”고 비판했다.
이와 함께 상법개정안에는 소액주주와 우리사주조합(또는 근로자 대표)이 추천하는 1인을 반드시 사외이사로 선출해야 한다는 조항도 담겼다. 이 경우 최대주주만 선임에 제약을 받게 되면서 오히려 주주 간 역차별이 발생할 뿐 아니라 대주주의 재산권 침해 소지 또한 다분하다는 게 재계의 주장이다.
④자사주 신주배정 금지=야권은 기업의 인적분할 시 지주회사가 보유하게 되는 자사주에 분할회사의 신주 배정을 금지하는 내용의 개정안(일명 ‘이재용법’)도 밀어붙이고 있다. 법 개정을 통해 자사주를 활용한 대기업의 편법적 승계에 제동을 걸자는 취지지만 삼성그룹 등 국내 기업들의 지배구조 개편이나 경영권 방어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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