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0여 개의 회사에 지원해 중견기업 단 한 곳으로부터 합격 통보를 받은 신모(28) 씨는 최근 입사를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신 씨는 “합격한 회사가 업계에서는 건실하다고 소문난데다 연봉과 복리후생도 괜찮아 고민을 많이 했다”며 “하지만 중소기업에서 시작하면 나중에 대기업 이직은 꿈도 꿀 수 없을 것만 같아 올해까지만 대기업에 더 도전해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청년 실업률이 역대 최고에 이를 것이라는 얘기와 대기업들도 신규 채용 규모를 줄일 전망이라는 뉴스가 쏟아지고 있지만 신모 씨와 같은 취업준비생들은 중견·중소기업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지난해 6개월 이상 장기실업자 가운데 청년이 차지하는 비중이 2004년 이후 12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다. 오랜 기간에 걸쳐 구직활동을 하는 청년이 급증하고 있다는 얘기다. 백수로 머무르는 청년이 늘어나는 이유는 비단 꽁꽁 얼어붙은 고용 시장 때문만은 아니다. 일자리는 있지만 기대 수준을 충족할 만한 곳은 적다는 점도 작용한다. 첫 직장을 무조건 잘 들어가야 이직도 좋은 곳으로 할 수 있다는 인식 등이 또 다른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자칫 이들이 오랜 기간 구직활동에 지쳐 취업 자체를 포기해버리면 개인은 물론 국가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14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장기실업자 13만3,000명 중 청년(15~29세) 비중은 43.7%였다. 이는 2004년(46.9%) 이후 12년 만의 최고 수준이다. 전년(38.1%)보다는 5.6%포인트 증가했다. 지난해 전체 장기실업자 수가 많았던 탓에 비중으로는 5.6% 늘었지만 실제 인원수를 따져보면 2015년 3만7,338명에서 2016년 5만8,121명으로 무려 55.7%(2만783명) 증가하며 수직 상승했다.
이 같은 추세는 중장년에 비해 대체로 고스펙을 보유한 청년의 일자리 기대수준이 높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중장년은 생계 유지, 가족 부양 등을 위해 비교적 질 낮은 일자리도 마다하지 않지만 청년은 그렇지 않다. 또 일단 중소기업 직원이라는 낙인이 찍혀버리면 고용 시장에서 홀대받는 관행도 이런 경향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실제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이직하기는 쉽지만 반대의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인식이다.
문제는 이들이 대학원 진학, 결혼 등의 방법으로 취업을 회피해버리면 개인은 말할 것도 없고 국가 경제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통계상으로는 오히려 좋아질지 모른다. 4주 이상 구직활동을 하지 않으면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돼 실업률이 되레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들은 자아실현은 물론 소비 여력도 확보하기 어렵게 된다. 당장 올해부터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 이들의 취업 회피는 국가 경제의 활력에도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양현수 고용노동부 노동시장분석과장은 “올해 청년실업률이 외환위기 이후 최고 수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장기실업자마저 늘어나고 있어 우려된다”며 “대기업이 채용 규모를 줄일 것으로 관측되는 상황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중견기업 등에 대한 인식 변화도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세종=임지훈기자 jhl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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