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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고문' 10년에 사분오열...재건축 피로감에 쩌는 압구정

구현대, 추진준비위 4개 난립해 주도권 경쟁

동의율 절반 넘은 한양도 '층수 제한'에 답답

신현대, 미성 1·2차도 주민간 이견에 '시끌'

일상생활 불편·지자체 불만 커지며 각자도생 모색





“저마다 위원장이라는데 누가 누군지도 모르겠어요.” “아파트가 온통 분쟁 중인데 강남구청은 도대체 뭐하고 있는지.” (구현대 주민)

“부산 해운대에도 50층 아파트를 짓는데 한강에는 왜 35층밖에 안된다는 건가.” (한양1차 주민)

“수도에서는 녹물이 나오고 주차하기가 어려워 아예 한 달 동안 차를 세워놓기만 한 적도 있어요.” (신현대 주민)

“미성1차가 겨우 3개 동뿐인데 단독 재건축을 추진하는 건 문제입니다. 먼저 공사를 시작하면 소음이나 먼지 같은 건 어떻게 하려는 건지.” (미성2차 주민)

강남 재건축 단지 중 하나인 압구정지구에서 만난 주민들의 목소리에는 일상에 대한 불편과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불만이 뒤섞여 있었다. 무엇보다 재건축 사업에 대한 극에 달한 피로감이 묻어났다. 지은 지 40년이 지난 아파트에서 온갖 불편함을 감수하며 사는 주민들은 재건축에 기대를 걸었지만 이것도 사업 얘기가 시작된 후 10년 가까이 흘렀다. 재건축이 바로 ‘희망고문’이었던 셈. 결국 주민들의 의견은 사분오열로 갈라졌고 각자도생만을 모색하는 형편이다.

매서운 추위가 다소 누그러진 14일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통상 ‘구현대’로 불리는 단지에는 정문부터 내부까지 빨간 글씨의 현수막이 곳곳에 붙어 있었다. ‘아웃소싱(OS) 용역 동원 사업추진요청서 제출 원천무효!’

현재 구현대에서 활동하는 재건축 관련 모임은 무려 4개다. 재건축조합도 재건축조합추진위원회도 아닌 재건축준비위원회다. 압구정지구 전체 1만240가구 중 4,355가구로 거의 절반에 육박하는 구현대인 만큼 이들의 주도권 경쟁도 치열하다. 그중 두 곳이 법정 재건축추진위원회 구성을 놓고 절차상의 문제로 갈등이 벌어진 것이다.

얼마 전 재건축준비위 중 하나인 ‘올바른재건축위원회’가 외부 용역 단체를 통해 주민동의서를 받자 지난주 말 ‘입주자대표회의 발족 재건축준비위’는 이는 불법이라며 강남구청에 진정서를 냈다. 올바른재건축추진위가 받은 주민 동의율이 50%에 임박하자 견제에 나서 것이다.



주민들은 이처럼 반복되는 단체 간 갈등에 넌더리가 난다는 반응이다. 박모(75)씨는 “저마다 위원장이라는데 누가 누군지도 모르겠고 차라리 구청에서 투명하게 주도해줬으면 좋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30년 넘게 이곳에서 살았다는 안모(56)씨도 “재건축 논의로 10여년을 끌면서 이런저런 이해관계가 얽혀 이제는 (재건축 자체가)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한양 1~2차의 경우 최근 주민 동의율이 50%를 넘기며 재건축추진위 구성을 서두르고 있지만 이곳 주민들의 기분도 개운치 않아 보였다. 단지 초입에 ‘경축, 강남구청 추진위원회 구성 공공 지원 확정’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렸지만 주민들은 기자의 질문에 긴 시간 이야기를 털어놓을 정도로 할 말이 많았다.

주민 이모(64)씨는 “부산 해변에도 50층짜리 아파트를 짓는 마당에 강변 경관을 관리하겠다고 층수 제한을 하는 걸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고 박모(70)씨는 “집도, 도로 간격도 너무 비좁은데 (35층 제한이면) 땅은 땅대로 내놓고 재건축하는 보람도 없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동의율이 45%에 육박하는 신현대 주민들은 재건축에 대한 찬성·반대가 여전히 팽팽한 상황이었다. 주차·전기·배관 등 생활의 불편함을 토로하는 측과 공사 기간 이주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뒤섞였다. 80대의 이모씨는 “도배도 불편한데 이사는 얼마나 불편하겠느냐”며 “주변 친구들도 모두 반대하고 서울시의 층수 제한 역시 별로 생각 안 해봤다”고 말했다.

이 같은 분위기 탓에 1,924가구의 대단지임에도 신현대에는 아직 조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하려는 모임이 하나도 없다.

주민 동의율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미성1차는 바로 옆 미성2차와 주민들 간 미묘한 갈등 분위기가 감지됐다. 재건축 연한이 올 12월에야 충족되는 미성2차와 달리 1982년 지어진 미성1차는 연말 유예기간이 끝나는 초이익환수제를 피하기 위해 재건축추진위원회 구성을 서두르고 있다. 미성1차에서만 30여년 거주해온 김모(76)씨는 “2차는 재건축 연한도 아직 못 채웠으니 1차만 우선 나선 것”이라며 “세금 문제로 서둘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미성2차 주민들의 시선이 달가울 리 없다. 주민 양모(67)씨는 “1차만 단독으로 하는 게 이기적으로 보인다”며 “(자기들) 먼저 하면 공사 먼지에다 소음이 나고 복잡할 것”이라며 불만을 드러냈다.

/빈난새·신다은·하정연·김우보·김기혁기자 binthe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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