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여년 역사의 도시바 본사가 위치한 도쿄도 미나토구 빌딩. 몇 해 전만 해도 이곳 최고층에는 역대 사장을 지냈던 경영진들의 호화로운 사무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도시바 사장들은 4년의 임기가 끝나면 상담역·고문을 맡아 후임 경영진을 감독하며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해왔다. 이른바 일본 특유의 ‘원정(院政) 시스템’이다. 지난 2000년 사장을 지냈던 니시무라 다이조는 한때 ‘도시바의 천황’으로 불렸을 정도다. 이런 경영구조에서 후임자가 분식회계 같은 전임자의 잘못을 적발하기란 사실상 어려운 법이다.
일본 재계에는 ‘철의 삼각형’이라는 말이 있다. 도시바와 도쿄전력·경제산업성의 끈끈한 유착구조를 빗댄 말이다. 도시바가 2006년 미국 원자력 발전회사인 웨스팅하우스를 54억달러에 인수한 것도 정부 정책에 부응하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경쟁사들이 미래가 불투명하다며 인수를 포기한 사업에 무모하게 투자한 것이야말로 도시바의 최대 패착이었던 셈이다. 도시바 경영진이 아베 신조 총리가 설치한 사적 자문기관인 ‘21세기 구상 간담회’의 좌장을 맡은 것이나 정부에서 도시바의 회계부정을 묵인해온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도시바는 1875년 과학자인 다나카 히사시게가 설립한 다나카제작소를 모태로 삼고 있다. 그는 일본에서 증기기관을 최초로 만든 에도시대의 천재로 불리는 인물이다. 또 다른 창업자 후지오카 이치스케는 미국으로 건너가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을 만나 백열전구를 개발했다. 디지털 컴퓨터와 노트북 등 도시바가 일본 최초로 개발한 제품은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일본의 자존심이었던 도시바가 회계부정 스캔들에 이어 미국 원자력 사업에서 대규모 손실을 내면서 공중분해 위기에 몰렸다. 원전 자회사는 물론 금쪽같은 반도체마저 처분하는 등 돈 되는 사업은 모두 팔겠다고 나섰지만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고 한다. 일본 제조업의 몰락을 지켜보는 우리 기업들도 한눈팔지 말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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