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백하건대 나는 침묵을 두려워했다. 너라서 좋은 게 아니라 누구라도 괜찮았다. 그래서 그간의 연애는 괜찮지 않았다. 이건 앞으로 타게 될 수많은 ‘썸’을 위한 변명이다.
나는 좀처럼 혼자 있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특별한 일을 하지 않더라도 누군가와 함께 있어야만 마음이 놓였다. 사소한 내 이야기를 기꺼이 들어 줄 사람이 필요했다. 털어놓은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찰나의 감정들이 뒤엉켜 있었다. 대화라기보다는 안에서 토해내는 것이었다. 감정의 찌꺼기들을 배출할 상대가 늘 필요했다.
그러나 토해내고 한참을 토해내도 그때뿐이었다. 금새 심리적 허기가 찾아오곤 했다.
그렇게 순간의 감정들을 덜어낸 만큼 텅 비어버린,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 속에서 발버둥쳤다. 누군가를 만나면서도 또 다른 누군가를 기다리는 껍데기뿐인 관계가 되풀이됐다.
모르고 살았다.
뭐가 잘못됐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아니, 잘못됐다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알콩달콩한 연애사가 기억나지 않는 건 무뚝뚝한 내 성격 탓이려니 했다.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평범한 연애를 하고 있다고 믿었다.
나를 정확히 ‘진단’하게 된 건 ‘비자발적인 관계의 쉼표’ 덕이었다.
한 달 이상 연인 없이 지낸 적 없었던, 열일곱 이후 무한 반복되던 연애가 ‘엄청난 피로와 귀찮음’으로 휴지기를 맞게 된 것.
‘이 사람도 아니구나’ 하는 결론을 내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헌 연애’를 정리했는데 ‘새 연애’를 시작할 에너지가 단 ‘1’도 남아있질 않았다.
방전.
화장실조차 마음놓고 가기 힘들 정도로 일이 몰아치던 시기. 불안과 짜증은 평소의 두세 배로 늘어났는데 받아줄 이가 사라진 상황.
회사-집-회사-집이 반복되면서 곱절이 된 짜증과 불안이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쌓여만 갔다.
친구에게 토로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아주 미세한 감정의 변화까지 시시콜콜 공유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내 상황과 감정에 대해 ‘공감’받으려면 상사·동료·후배에게 한 마디로 정리하기 힘든 얽히고 설킨 복잡미묘한 관계에 대해 처음부터 설명하는 매우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만 하니까.
마지 못해 혼자가 되었다.
그 때였다.
‘나는 왜 혼자인 적이 없었던 걸까’ 라는 의문을 품게 된 것도.
그간의 연애는 내 안의 불안을 달래기 위함이었다는 걸 깨닫게 된 것도.
돌이켜 생각해보면 마지막 순간, 전 남자친구들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넌 나를 좋아하긴 하니”
“내가 네 인생의 우선순위가 아닌 것 같아”
“힘들어”
그때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우린 소울 메이트(soulmate)가 아닌 것 같아”
내 인생을 100%로 만들어 줄 ‘소울 메이트’가 있다는 믿음이 송두리째 흔들리기 시작했다.
‘혼자라서 괜찮지 않다. 그래서 둘이어야 한다’
관계의 출발점이 불안함을 달래기 위함이었음을 깨달았다.
충족감을 느끼지 못하고 쉽게 지겨워했던 이유가 연애를 위한 연애가 아니었기 때문임을 깨달았다.
연애 16년 차, 내 연애는 낙제점이었다.
-너무 늦게 알게 된 연애의 상식-
연애는 자기계발 과정도 탈출구도 아니다.
‘결핍’ 해소용 관계는 건강하지 않다.
그래서 ‘혼자라도 괜찮아야 둘이어도 괜찮다’
혼자여도 괜찮을 때, 진짜 제대로 된 연애를 시작하고 싶다.
친구는 내 고백을 듣고 “‘썸’의 합리화이자 진지한 관계를 회피하기 위한 변명”라고 말했다.
인정한다.
책임감 있는 관계의 필요성을 들먹이며 나는 지금 ‘썸’을 정당화하고 있다.
/아직은썸만타야되는여자 sednew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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