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리우올림픽 리듬체조에서 손연재(23·연세대)는 4위로 메달권에서 벗어난 것을 확인하자 아쉬움의 눈물을 훔쳤다. 한 스포츠 평론가는 ‘아무도 넘어본 적이 없는 벽을 넘기 위한 도전이었기에 더욱 아름다운 눈물’이라고 평했다.
‘리듬체조 요정’ 손연재가 지난 18일 전격 은퇴를 결정했다. 손연재의 소속사인 갤럭시아SM 관계자는 “손연재가 다음달 열리는 국가대표 선발전에 나가지 않고 현역에서 은퇴한다”고 발표했다.
손연재의 17년 도전 여정은 그 자체로 역사이자 기적이었다. 종목 자체에 대해서도 생소한 국내에서 그가 걸은 발자국은 그대로 새 길이 됐다. 한국 리듬체조 선수가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 유니버시아드에서 입상한 것은 손연재뿐이다. 올림픽 4위는 아시아 최고 성적이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때 데뷔한 리듬체조 개인전은 지금까지도 아시아 선수의 입상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
6살에 리듬체조를 시작한 손연재는 인내와 고통, 좌절의 시간을 버텨냈다. 2010년 성인무대에 데뷔한 손연재는 그해 11월 광저우 아시안게임 개인종합에서 동메달을 따며 두각을 나타냈다. 리듬체조 강국인 러시아에서 훈련해온 그는 훈련비 충당 등을 위한 광고 출연으로 인지도를 쌓았고 자력으로 2012런던올림픽 본선 티켓을 따냈다. 한국 리듬선수의 올림픽 본선 자력 진출은 2008베이징올림픽에 나간 신수지 이후 두 번째였다. 런던올림픽에서 개인종합 5위에 오르는 쾌거를 이룬 손연재는 2014인천아시안게임에서 한국 리듬체조 사상 최초로 개인종합 금메달을 따내며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 2015년 광주 유니버시아드에서도 가볍게 개인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리우올림픽에서는 동메달을 목표로 했지만 러시아와 동유럽의 벽은 높았다. 러시아의 마르가리타 마문, 야나 쿠드랍체바와 우크라이나의 간나 리자트디노바에 이어 4위에 만족해야 했다.
8월 대만 유니버시아드 출전을 놓고 고민하던 손연재는 결국 은퇴를 결심했다. 리우올림픽 4위로 현실적인 목표가 사라진 것도 큰 이유지만 운동에 전념할 여건도 여의치 않아졌다. ‘정유라 특혜의혹’에 따른 체육특기생 학사관리 강화 방침으로 장기간 러시아 훈련과 학사 일정 병행이 어렵게 됐고 2014년 ‘늘품체조’ 시연회 참가 후 근거 없는 특혜 의혹에 휩싸이기도 했다.
일찍 요정의 날개를 접고 정든 포디움을 떠나기로 한 손연재는 지난 18일 밤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끝나서 너무 행복했고, 끝내기 위해서 달려왔다. 그래도 울컥한다. 아쉬움이 남아서가 아니다. 조금의 후회도 남지 않는다”면서 “지금까지 나와 같이 걸어준 모든 사람에게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전했다. 한국은 물론 아시아 리듬체조는 올림픽 메달에 대한 기약 없는 기다림이 다시 시작됐다. 손연재는 오는 3월4일 기자회견을 열고 은퇴 배경과 향후 진로에 관해 설명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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