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영화제에서 별처럼 빛나는 환희를 선물 받았습니다.”
제67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아 ‘베를린의 여왕’으로 새롭게 태어난 배우 김민희는 18일 밤(현지시간) 검정 드레스 차림으로 은빛 곰트로피를 받아들고는 감격에 찬 수상소감을 발표했다. “너무 아름다운 영화를 만들어주신 홍상수 감독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할 때는 울음을 참지 못하겠는지 목소리가 심하게 흔들렸다.
김민희의 이번 수상으로 한국 영화계는 ‘세계 3대 영화제 여우주연상 석권’이라는 영화사의 새 페이지를 열게 됐다. 한국 영화는 지난 1987년 강수연이 베니스영화제에서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데 이어 2007년 칸영화제에서 이창동 감독의 ‘밀양’의 여주인공 전도연이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꼭 10년 만인 2017년 김민희가 전인미답의 베를린영화제 여우주연상의 주인공으로 우뚝 선 것이다.
한국 영화는 1961년 강대진 감독이 ‘마부’로 베를린영화제서 특별은곰상을 탄 것을 시작으로 3대 영화제서 여러 차례 크고 작은 상을 받았다. 특히 베를린영화제와 인연이 각별했다. 장선우 감독이 1994년 ‘화엄경’으로 알프레드바우어상을, 2004년에는 김기덕 감독이 ‘사마리아’로 감독상을 받았다. 2005년에는 임 감독이 해마다 중요 영화인들에게 수여하는 명예황금곰상의 영예를 안았다. 2007년에는 박찬욱 감독이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로 가장 혁신적인 영화에 주는 알프레드바우어상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2011년에는 박 감독이 동생 박찬경씨와 함께 만든 단편 ‘파란만장’이 단편 경쟁 부문 황금곰상을 받기도 했다.
이번 베를린영화제에서 김민희의 수상이 애초부터 낙관적인 것은 아니었다. 공식 경쟁 부문에 올랐던 다른 17편은 하나같이 쟁쟁했고 영화 ‘원초적 본능’의 저명 감독 파울 페르후번이 이끄는 심사위원단은 최종 수상작 선정을 두고 고민을 거듭한 끝에야 홍 감독의 19번째 장편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서 주인공 ‘영희’ 역할을 소화한 김민희를 여우주연상에 최종 낙점할 수 있었다.
김민희는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서 유부남 영화감독과 불륜의 사랑에 빠졌던 여배우 ‘영희’를 열연했다. 극 중 영희는 독일 함부르크와 강릉에서 지인들을 만나 사랑과 삶에 관해 질문하고 번민한다. 김민희는 유부남 영화감독과 불륜의 사랑에 빠진 적이 있는 주인공 ‘영희’의 캐릭터 이해와 연기 태도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진짜 사랑을 찾으려는 모습이었던 것 같다”면서 “(영희가) 진실한 사랑을 원하는 모습을 잘 표현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 영화는 다음달 국내 개봉한다.
영화는 무엇보다도 홍 감독과 김민희가 불륜 논란에 휩싸여 있는 현실과 오버랩된 소재로 만들어져 관심을 끌었다. 두 사람은 이날도 서로 다정다감한 모습을 스스럼없이 드러냈다. 시상식에서 김민희는 여우주연상으로 호명된 순간에 자신의 왼쪽에 앉은 홍 감독부터 바라보며 웃었고 수상 기념 기자회견에는 홍 감독의 양복 재킷을 걸치고 나타났다. 회견에서도 서로 상대를 추어올렸다. 김민희는 “아침마다 너무 좋은 글을 받는 것은 여배우로서는 굉장히 기쁘고 신 나는 일”이라면서 “감독의 요구를 최선을 다해 표현하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그는 “감독님의 대본에는 항상 재미있는 유머가 많다”면서 “제가 그것을 표현하는 데 서툰 점이 있지만 (감독의 의도대로) 맛을 살리려고 노력한다”고도 했다. 홍 감독은 그런 김민희를 옆에서 지켜보던 중 회견을 주재하는 여성 사회자가 자신에게 마이크를 넘겨 보충 답변을 요구하려 했으나 “이 회견은 그녀의 자리다. 저는 그저 동석하고 있을 뿐”이라며 웃어넘겼다.
한편 이번 영화제의 최고상인 황금곰상은 헝가리 출신 일리코 엔예디 감독의 ‘온 바디 앤드 소울(On Body and Soul, 원제 Testrol es lelekrol)’에 돌아갔다. 로맨틱 판타지로 성격이 분류된 이 영화는 매일 밤 같은 꿈을 꾸는 한 커플의 이야기를 다뤘다. 도살장에서 피어나는 사랑과 교감에 관한 질문이다. 남우주연상(은곰상)은 토마스 아르슬란 감독의 로드무비 ‘헬레 내히테(독일어명 Helle Naechte, 영어명 Bright Nights)’에서 열연한 게오르크 프리드리히에게 돌아갔다.
/문성진 문화레저부장 hns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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