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가 길거리를 헤매고 있다. 갈 곳을 몰라 이곳저곳 기웃거리면서 ‘동가숙서가식(東家宿西家食)’하는 신세다. 태극기집회가 점점 커지고 있지만 여기에 보수의 내일이 있다고 말하는 전문가는 드물다. 대선이라는 큰 장이 펼쳐져 좌판을 벌였지만 보수정당 쪽에는 손님이 없다. 자유한국당에는 10여명의 대선주자가 나섰으나 손님보다 가게 주인이나 점원들이 더 많다. 일부 야당의원들은 한국당 대선주자에 대해 “잠룡이 아니라 도마뱀 정도”라며 비아냥거린다. 보수정당의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보수세력이 야당 경선판을 기웃거리는 웃지 못할 상황까지 전개되고 있다. “한국 보수의 가장 큰 문제점은 ‘사상의 빈곤’입니다. 보수주의 관련 책 하나 안 읽은 사람들이 무슨 보수인가요. 보수라고 말할 자격도 없습니다.” 중앙대 법대 명예교수 출신인 이상돈 국민의당 의원은 이같이 날카롭게 지적했다. 이 의원은 “보수주의의 아버지인 에드먼드 버크도 모르는 사람들과 어떻게 고급담론이 가능한가”라며 “우리 보수가 태극기부대나 앞세우고 색깔론이나 내세우면 희망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지금 보수가 반성과 개혁 없이 이 상태로 가면 진보정권이 15~20년 지속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보수의 적통인 박근혜 대통령이 쇄신과 개혁으로 보수를 되살릴 마지막 카드였으나 이 기회가 물 건너가면서 앞으로 상당기간 보수의 희망은 없다는 것이 이 의원의 진단이다.
김영우 바른정당 의원은 “보수 스스로 대한민국을 지키고 발전시켰다는 자신에 대한 과찬 속에서 권력에 취해 즐기다 그 결과가 이번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나타난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여기서 국민들을 또 속여서는 답이 없다”며 “철저한 자기반성이 먼저이고 진정한 보수의 가치에 대해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안의식·고광본 선임기자 miracl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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