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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불행에 대한 무관심 사회적 감수성 부재 꼬집다

[리뷰] 연극 '메디아'





이 사회는 타인의 불행에 얼마나 잔인한가. 슬픔에 동조하는 듯 싶다가도 이내 타인의 불행은 일상의 지루함을 달래는 이야깃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사회적 감수성이 마비된 사회는 비극의 연속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 고대 그리스를 배경으로 한 연극 메디아 속 현실과 지금의 대한민국이 맞닿아 있는 지점도 바로 사회적 감수성의 부재다.

이달 24일 막을 올린 연극 메디아는 그리스 3대 비극 작가인 에우리피데스의 ‘메디아’를 원작으로 국립극단이 선보인 작품이다. 메디아에 대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미지는 ‘자신을 버린 남편에게 복수하기 위해 아이들마저 죽인 극악무도한 여자’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정받을 수 없는 패륜범죄자인 셈. 그러나 로버트 알폴디 감독이 연출한 연극은 메디아를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았던 이 사회를 비추는 데 집중한다.

이 작품이 가장 먼저 주목한 이 사회의 부조리는 의연함의 강요다. 알폴디 감독은 25일 관객과의 대화에서 “한 인간의 비극을 초래한 주변 사람들의 무관심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비탄에 빠진 메디아에게 사람들은 “인간 누구나 닥치는 불안을 견뎌내야 한다”고만 말한다. 문제를 해결해주기는커녕 공감과 위로로 메디아를 어루만져 주는 이는 없다.

또 한가지는 모성의 강요다. 내 몸 하나 추스르기 어려운 가엾은 메디아에게 세상 사람들은 어미로서의 의무를 묻는다. 처자식을 버리는 이아손에게 이 사회는 너무도 관대하다. 여자가 가진 욕망은 죄악과 탐욕이 되고 남자가 가진 욕망은 성공에 대한 열정으로 미화된다.

메디아는 이 사회가 요구하는 것, 주변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여기서 관객들, 특히 여성 관객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러나 기울어진 사회에서 메디아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모든 것을 다 바쳐 사랑한 한 남자에게 버림받고 절망의 나락에 떨어진 메디아는 결국 남성중심 사회가 설계한 여성성(성적 쾌락·임신)을 통해 살 길을 찾는가 하면 끝에는 여성성의 파괴(모성 포기)를 통해 욕망을 실현한다.





배우 이혜영의 카리스마는 극의 긴장감을 이어가는 힘이다. 때때로 객석의 웃음을 유도하기 위해 넣은 대사나 장면이 극의 흐름을 방해하는 경우도 있지만 단순한 구조의 무대 위에서 매끄럽게 장면을 전환하는 능력이 돋보였다. 특히 이 극을 현대화하고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데 코러스의 역할이 컸다. 마치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듯 비극을 대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관객들은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소소한 해석거리가 많다는 것은 이 연극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이 극은 고대 그리스를 무대로 하는데도 메디아를 제외한 등장인물 대부분이 요즘 사람들의 옷을 입고 있다. 이 극을 오늘날 우리의 이야기로 치환하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 국내 1세대 디자이너 진태옥이 디자인한 메디아의 의상을 통해 메디아의 감정 변화를 읽는 재미도 있다. 패션쇼 무대에 오를 법한 아름다운 의상은 메디아가 처한 현실을 더욱 비극적으로 보게 하는 힘이 있다.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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