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임당 신씨(신사임당·1504~1551)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율곡 이이 같은 위인을 낳아 길렀고 서예·그림 등 예술에도 뛰어난 작품을 남겼으니 전통시대 여성으로서는 최고라고 할 수 있다. 다만 항상 자식이나 남편의 뒤에 가렸으니 아쉬움도 있을 듯하다. 이는 시대의 한계로 남녀 누구나 겪는 어려움이라고 할 수 있다. 신사임당이 재주를 발휘한 것은 어릴 때부터 무남독녀로 부모의 애정을 받고 학문을 익혔으며 출가 뒤에도 친가에 살면서 일반 기혼여성들이 겪는 시가에서의 어려움이 적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의 남편도 가부장적 허세와는 거리가 있는 사람이었다. 사진은 강원도 강릉의 오죽헌에 자리한 신사임당 동상이다. /글·사진=최수문기자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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