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 가처분 기각 결정 및 형사 불기소 처분’.
누가 봐도 끝난 재판이었다. 초경합금 업체의 영업비밀침해 피해 사건으로 사건 자체도 복잡하고 어려웠다. 이런 암울한 상황에 추가 선임으로 투입된 당시 1년차 변호사는 모든 상황을 되돌려놨다. 검찰 항고로 일부 기소를 이끌어냈고 통계상 1% 정도만 받아들여진다는 재정신청도 인용돼 공소제기 결정을 이끌어냈다. 민사는 아직 항소심이 진행 중이지만 1심에서 영업비밀침해소송으로는 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고액인 70억원대 손해배상청구가 받아들여졌다.
법조계에서는 변리사 자격증이 있는 공대 출신 변호사의 전문성에서 ‘승리’의 원인을 찾고 있다. 하지만 반전을 이뤄낸 법무법인 세종의 지적재산권그룹 소속 류정선 변호사(37·변호사시험 2회)의 ‘전문성’과 함께 끝까지 파고든 ‘뚝심’이 승리의 빛을 발하게 했다는 평가다. 수시로 업체가 있는 대구로 찾아가야 했고 일이 늦게 끝나 혼자 모텔에서 보낸 적도 많았다. 서울대 공대(전기공학부) 출신이지만 생소했던 분말야금 분야를 알기 위해 전공 책을 따로 사 밤을 새워가며 기술 공부도 했다. 여기에 손해액을 산정할 때는 재무제표상 계정과목 전부를 통계로 돌려 분석하기도 했다.
27일 서울 중구 퇴계로 법무법인 세종 사무실에서 만난 올해 5년차인 류 변호사는 “실제 지재권 전문변호사가 아닌 변호사를 상대로 소송을 해보면 해당 분야의 깊이에 대한 차이가 느껴진다”면서 “반드시 전공자여야만 해당 분야 사건 변호를 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최근 증가하고 있는 특허나 영업비밀 등 기술 관련 사건에서는 관련 법리를 잘 알고 전공자의 경우 기술 이해도 빠르기 때문에 강점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특화된 전문 변호사의 장점을 설명했다.
류 변호사는 대학 재학 중 정보기술(IT) 기업을 창업한 한 선배의 초창기 상품화권 계약서 등의 검토를 도우면서 일반 법률 지식을 더 갖추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당시 특허사무소에 재직 중이었던 류 변호사는 과감히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진학을 선택했다. 그는 “로스쿨은 재직 중 입학 준비를 병행할 수 있고 잘 따라가기만 하면 3년 후 합격이 가능한 제도였기 때문에 로스쿨 진학이 합리적 선택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류 변호사는 “특화된 전문 변호사는 그 분야에서 목소리를 내고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며 변호사 시장의 전문성을 누차 강조했다. 하지만 실력에 앞서 열정과 적극적인 태도가 로스쿨 변호사들에게 더욱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전문성을 알리기 위해서는 자기 실력은 자기가 증명하겠다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로스쿨 후배들에게 조언했다. 특히 포화되고 있는 변호사 시장에서 실력에 앞서 얼마나 자신의 열정을 드러내느냐가 한발 더 나아갈 수 있는 지름길이라는 설명이다. 보통 대형 로펌에서는 신입 변호사 대부분을 실무 수습을 통해 선발한다. 이 짧은 시간에 자신의 모든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실력과 함께 열정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불가능에 가까웠던 재판 결과를 ‘전문적인 실력’과 ‘열정 가득한 뚝심’으로 돌려놓은 경험이 듬뿍 묻어난 조언이다.
류 변호사는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실력을 발휘할 기회를 잡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도 드러냈다. 특히 법률 시장 불황과 변호사시험 합격자 실무수습 제도를 악용하는 일부 로펌들의 행태에 우려를 나타냈다. 일부 로펌들은 ‘6개월 의무 실무수습’ 제도를 악용해 싼 임금에 변호사를 고용하고 6개월 후 채용하지 않고 새로 수습 변호사를 뽑는 ‘변호사 돌려막기’ 식으로 운영하는 곳도 있다.
류 변호사는 “실무수습 제도를 악용하는 일부 사례들 때문에 제대로 된 취업도 어렵고 실력을 발휘할 기회를 잡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으로 가고 있다”며 “결국 법률 서비스의 질 저하로 연결되면서 법률 시장 불황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막기 위해 수습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현섭기자 hit8129@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