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러시아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처음으로 국제외교 무대에서 격렬하게 충돌했다. 양국 정상이 서로에게 존경과 감사를 표했던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시리아 제재에 대한 이견이 노출되며 급속히 냉랭해지는 모습이다. 조만간 열릴 예정이던 미러 정상회담 일정도 불투명하다.
2월28일(현지시간) 러시아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진행된 시리아 화학무기 사용 관련 제재 결의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이는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을 지지하는 러시아가 지난 2011년 시리아 내전 이후 일곱 번째로 행사한 거부권이기도 했다. 화학무기 공격에 연루된 시리아인 11명과 화학무기 관련 기관 10곳에 대한 제재를 담은 이번 결의안은 러시아 외에도 중국·볼리비아가 거부하며 찬성 9표, 반대 3표, 기권 3표로 최종 부결됐다. 안보리 결의안은 상임이사국(중국ㆍ러시아ㆍ미국ㆍ영국ㆍ프랑스)의 반대 없이 9표를 얻어야 통과된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행정부 고위인사들과 러시아 간 내통설이 미국 정계에서 떠도는 상황에도 여전히 두 나라 간에 앙금이 남아 있다는 것이 이번 표결 결과 드러났다는 점에서 주목된다고 지적했다. 이날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표결 후 “시리아의 화학무기 공격은 야만적”이라며 시리아 정부를 두둔하는 러시아는 “세계 안보보다 알아사드 정권에 있는 그들의 친구를 우선시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또 “회원국들이 자국민을 살상하는 다른 회원국에 대해 변명하기 시작하면 틀림없이 세상은 더욱 위험한 곳이 될 것”이라고 강하게 우려했다.
러시아도 이에 크게 반발하며 맞불을 놓았다. 블라디미르 사르폰코프 유엔 주재 러시아 부대사는 시리아 제재 결의안에 대해 “정치적으로 편향됐다”며 “‘서방 트로이카(미·영·프)’가 만든 초안을 통과시켜 러시아의 우려를 반영하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시리아 제재 결의안을 둘러싼 미러 간 이견이 노출됨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이 향후 어떤 방식으로 시리아 내전 종식을 이끌어낼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테러와의 전쟁을 위해 러시아와 손을 잡으려 하지만 이번 표결이 “크렘린궁을 신뢰하지 못하는 의회 내 공화당 세력의 우려를 보여줬다”며 “미 행정부에 잔존하는 반러 기조가 트럼프 대통령의 목표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오는 7~8월 열릴 것으로 전해진 미러 정상회담도 성사 여부가 불확실하다. 미 정부 고위관료는 앞서 러시아 현지 매체가 “미러 정상회담을 위한 실무준비 과정이 시작됐다”고 보도한 것에 대해 “별도의 준비작업이 진행되는 사항은 없다”고 반박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양측의 엇갈린 발언으로 볼 때 백악관과 크렘린궁의 화해 여부는 불확실하다”고 지적하면서 양국 지도자가 5월 주요7개국(G7) 정상회의 등에서 만날 가능성은 남아 있다고 전했다.
/이수민기자 noenem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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