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본토와 소아시아, 크레타 섬을 둘러싼 지중해 동쪽에 위치한 에게해는 가보지 않아도 우리에게 친숙하다. 어릴 적 누구나 한 번쯤 읽었을 법한 그리스신화의 무대로 상상력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매력이 있는 곳이다. 에게 문명의 발상지 크레타 섬이 에게해의 백미라면 산토리니 섬은 숨은 진주다. 우리나라에도 제법 알려진 산토리니는 깎아지른 절벽 끝자락에 다랑이논처럼 차곡차곡 쌓은 하얀색 가옥이 코발트색 바다와 절묘하게 어울리는 풍광이 압권이다. ‘라라 라라 라~’로 시작하는 경쾌한 음악이 깔린 스포츠음료 CF의 배경이 이곳이다. 황제여행 구설에 오른 언론사 주필이 전세기로 방문해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울릉도 크기 만한 산토리니는 본섬과 4개의 부속 섬으로 이뤄진 화산섬이다. BC 1,500년쯤 대규모 화산폭발로 가운데가 바닷속으로 가라앉아 지금처럼 초승달 모양의 섬이 만들어졌다. 그리스인들은 이곳을 ‘잃어버린 대륙’ 아틀란티스로 믿는다고 한다. 이 폭발이 어찌나 컸던지 인근 크레타의 에게문명을 파괴했다는 학설도 있다. 세계적 명소로 만든 이곳의 독특한 풍광과 색채의 마술에는 산토리니 사람들의 수 천년 지혜가 녹아 있다.
거무튀튀한 절벽과 대비를 이루는 하얀색 가옥은 자연환경과 전통 건축양식의 결합물이다. 에게해의 강렬한 햇빛을 반사하는 데 흰색이 제격. 회반죽으로 부석(浮石)을 벽체로 쌓다 보니 햇빛에 반사돼 흰색이 도드라지는 것이다. 유독 지중해 연안 마을에 하얀 가옥이 많은 것도 여기서 연유한다. 영화로 유명한 모로코 카사블랑카는 아예 스페인어로 ‘하얀 집’을 뜻한다.
정부가 산토리니를 벤치마킹해 여수 일원을 경관지구로 삼는다고 한다. 제11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확정한 남해안 관광벨트 조성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하지만 모방만으로 유구한 역사와 전통이 저절로 따라오지 않는다. 이미 충남 아산의 탕정 신도시에는 ‘지중해 마을’이라고 해서 산토리니를 그대로 옮겨 놓은 곳이 있기도 하다. /권구찬 논설위원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