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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찾는 진보, 보수에 손 내밀라]"분노프레임 휘둘리면 進步 아닌 退步"...'실사구시' 비전 제시를

■ 해외 정치사로 본 진보의 흥망성쇠

반미·포퓰리즘 열올리던 남미좌파정권 몰락

제3의길 내세운 블레어·변화 외친 오바마는

민심 사로잡고 진보정당 장기집권 길 열어

분노에 분노로 맞서면 혼돈 속 주도권 뺏길수도

중도통합적 국정 통해 문제해결 능력 보여야

‘진보가 연대라는 고유가치는 확고히 하되 외연을 넓히면 흥했으나 보수의 분노 프레임에 휘말리면 쇠했다.’ 세계를 휩쓰는 보수의 집권 도미노 현상 속에서 진보정당의 흥망성쇠를 정리하면 이렇다.

오는 5월9일께로 예상되는 차기 대선에서 진보의 집권 가능성이 큰 것은 지구촌 시각에서는 다소 이례적이다. 이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민심이 폭발한 게 크지만 해외 진보 사례를 볼 때 만약 분노에 편승해 국가 경영을 한다면 보수에 되치기를 당하며 혼란이 지속될 염려가 크다.

실례로 진보는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전후해 고조된 ‘분노 프레임’에 휘말렸다가 연전연패 중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양극화 심화라는 신자유주의의 파산선고를 의미했는데 오히려 분노를 이용해 자국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 난민 반대를 앞세운 보수에 주도권을 빼앗겼다. 당시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는 반양극화 시위가 컸지만 진보가 새로운 희망과 변화의 열망을 모아내지 못한 것이다.

지난해 말 미국 대선에서 저소득층 백인의 분노를 부추긴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이 단적인 예다. 마치 아돌프 히틀러가 유대인 등에 대한 분노를 조작해 대거 학살한 것이나 북한이 주민들에게 끊임없이 반미를 주입하는 식이다. 유럽에서 진보정당의 퇴조는 심각할 정도다. 영국은 브렉시트(유럽연합 탈퇴·Brexit)를 이끈 보수당에 밀려 노동당이 점점 미미한 존재로 전락하고 최근에는 극우인 영국독립당에마저 노동자 표가 잠식되고 있다. 프랑스도 집권한 사회당이 바닥을 헤매며 극우세력이 급부상해 4월23일 대선(1차 투표)에서 우파 승리가 예상된다. 독일은 진보 어젠다까지 융합한 기민당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2005년 집권한 뒤 9월 총선에서도 4연임할 것으로 전망된다. 심지어 관용의 나라 네덜란드마저 극우세력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 유럽 영향이 큰 남미에서도 반미와 복지 포퓰리즘을 앞세웠던 좌파정권이 유가 하락 등에 따른 경제난과 부패로 잇따라 실각하고 있다. 2015년 말부터 과테말라와 아르헨티나·페루에서 좌파정권이 패했고 브라질 노동자당의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은 탄핵됐다. 주요 좌파 축이었던 베네수엘라도 심각한 경제난으로 우파가 의회를 장악했다.

진보가 보수와 ‘분노 대 분노 프레임’으로 싸워 희망을 주지 못하거나 경제성장과 양극화 해소에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패퇴할 수밖에 없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분노한 대중에 의해 정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면 포퓰리즘이 득세하고 정치 파괴와 대중 분노의 악순환이 되풀이되며 진보가 패한다. 저학력·저소득층이 나와 다른 존재, 이민자나 타 인종, 소수자 등을 기술혁신 가속화에 따른 일자리 감소에 대한 분노의 희생양으로 삼도록 보수가 이용하는 식이다.

미국 조지 W 부시의 브레인이었던 칼 로브는 “보수 유권자를 투표장으로 끌어내도록 분노 포인트를 잡아야 한다”며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갈등·분열 구조를 만들어 보수층을 결집했다. 보수층이 희망을 담은 공약보다 반대파에 대한 분노 때문에 투표하는 성향을 공략한 것이다.







반면 진보는 ‘변화와 희망’을 내세웠을 때 길이 열렸다. 1997년 18년간의 보수당 집권을 끝내고 13년간의 노동당 시대를 열었던 토니 블레어는 전후 사회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의 길 대신 제3의 길(The Third Way)을 내세웠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예스 위 캔(Yes, We Can)” “Change(변화)”를 내세우며 ‘담대한 희망’을 제시해 성공했다. 비교 기준이 좀 다르지만 중국 덩샤오핑은 공산주의자임에도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는 혁명적 사고 전환으로 오늘의 중국을 만들었다. 이른바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黑猫白猫)론이다. 이진복 민주연구원 정책연구실장은 “보수는 현상 유지가 박탈됐을 때 분노심리를 더 많이 느낀다”며 “진보는 희망을 노래하고 실제 그에 걸맞은 실력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진보는 복지 등 약자 배려, 공정한 경제·사회 균형발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등의 가치에 충실하되 자유로운 시장경제, 법·질서, 튼튼한 안보 등 공동체 유지라는 보수 가치까지 포괄하는 실사구시(實事求是) 비전과 전략을 갖춰야 한다. 촛불민심 등에 극렬히 저항하며 분열과 갈등을 부추기는 보수 측에 분노로 맞서면 혼돈으로 치달으며 표류할 수밖에 없다. 집권 시 ‘내일이 오늘보다 나을 것’이라는 희망을 주며 중도통합적 국가 운영으로 보수의 협력을 끌어내야 한다. “국가가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할지 묻지 말고 국민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지 자문하라”고 한 존 F 케네디의 리더십도 필요하다. “2차 대전 후 야당·노사와 정례적으로 만나 협조를 구하며 ‘복지 스웨덴’의 토대를 닦은 타게 엘란데르, 독일에서 기민당과의 대연정을 통해 동방정책을 추진하며 통일 기반을 놓은 사민당의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 등도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은 조언했다.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당과 의회의 위기, 저성장과 양극화가 겹친 사회경제적 위기, 미국과 중국이 충돌하는 국제적 위기”라며 “태산 같은 숙제를 풀어내기 위한 정책 콘텐츠(애플리케이션)는 지성 총합으로 많이 있지만 이를 구동시킬 운영체제(OS)가 작동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오바마의 대선 전략을 분석한 ‘빅데이터 승리의 과학’이라는 책을 쓴 고한석 민주연구원 부원장은 “대만과 몽골은 50여년 만에 처음으로 진보가 정권을 교체했다가 설익은 바람에 보수에 넘겨줬다가 이후 또다시 잡았다”며 “얼리 어답터(새 제품을 먼저 구매하는 사람)들이 새 제품(진보)을 써봤다가 뭔가 부족하다고 느끼면 캐즘(일시적 침체)에 빠지고 자칫 데스밸리(죽음의 계곡)에 처하게 되므로 진보는 신산업으로의 산업구조조정과 사회적 안전망 동시 구축 등 성숙한 제품과 서비스를 내놓아야 성공한다”고 강조했다.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진보를 전함에 비유한다면 그 가치와 무게를 튼튼히 하면서도 그물은 블루오션을 향해 던져야 한다”며 변화를 촉구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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