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초 스위스 다보스에서는 각국의 기업인과 경제학자·정치인 등이 모여 범세계적인 경제 문제에 대한 해법을 논의하는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이 열린다. 여기서는 세계 각국의 엘리트들이 모이는 만큼 굵직굵직한 경제 이슈들이 논의된다. 그런데 2016년 연차총회에서는 다소 특이한 주제가 내걸렸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화두가 제시된 것이다. 다보스포럼에서 과학기술이 핵심 주제로 등장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여기서 다보스포럼의 창시자인 클라우스 슈바프 회장은 4차 산업혁명의 성공 요건으로 강력하면서도 유연한 지식재산 제도를 꼽았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화두를 풀기 위해 각국이 인공지능(AI)과 바이오·블록체인 등 신기술 개발에만 매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슈바프 회장은 왜 지식재산 제도를 지적했을까.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물건이 아니라 지식과 정보가 핵심 가치가 되기 때문에 이들 지식재산에 대한 강력한 보호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은 우리나라에도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된 상황이다. 당장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기업들은 물론이고 정부도 대응 방안을 모색하느라 골몰하고 있다. 이처럼 사안의 중요성이 커지다 보니 정치권에서도 핫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주요 대선주자들은 4차 산업혁명을 단골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대통령 직속으로 4차 산업혁명위원회를 만들어 벤처기업과 창업 생태계를 활성화하고 기본 인프라인 사물인터넷망 일등 국가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와 안희정 충남지사도 4차 산업혁명 대비를 위해 교육 시스템 개혁과 산업구조 개편을 약속했다.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도 창업생태계 조성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이런저런 단어들만 잔뜩 늘어놓고 있을 뿐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성공 요건인 지식재산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한마디로 알맹이가 빠진 설익은 공약들만 판치고 있는 셈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지식재산 업무는 컨트롤타워가 사실상 없는 가운데 여러 부처에 흩어져 중구난방식으로 처리되고 있다. 특허·상표·디자인은 특허청이, 저작권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리적 표시는 농림축산식품부가 맡는 식이다. 이러다 보니 기술 융합시대의 흐름에 유연하고 효율적인 대처가 어려운 실정이다. 실제로 특허받은 소프트웨어(SW)를 CD나 USB로 유출할 경우 특허 침해에 해당돼 특허권자가 보호를 받게 되지만 온라인으로 전송하면 보호를 받지 못하는 모순이 있어서 2005년 이후 네 차례나 법률 개정을 시도했으나 다른 부처와의 갈등 때문에 무산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 지식재산 정책을 총괄하는 국가지식재산위원회가 가동되고는 있으나 컨트롤타워로써의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 위원회의 사무처 역할을 맡은 지식재산전략기획단 조직이 전문적이지 않은데다 잦은 인사로 인해 업무 추진력이 떨어진 상태다. 핵심 보직인 지식재산정책관의 경우 지난 1년 동안 네 차례나 바뀌었다. 이런 상태에서 업무가 제대로 추진될 리는 만무하다.
우리나라가 지재권 이슈에 신속하고 유연하게 대응하려면 집중형 지식재산 행정체계를 구축하고 있는 미국이나 영국 등 선진국의 제도를 참고해볼 만하다. 미국의 경우 특허청은 특허·상표뿐만 아니라 저작권까지 관장하는 통합적인 지식재산 행정 업무를 수행하고 있고 영국도 특허청을 확대 개편한 지식재산청(UKIPO)에서 산업재산권과 저작권 등을 총괄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우리나라가 글로벌 흐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우선 정부 시스템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런 면에서 지식재산 컨트롤타워의 위상부터 정립해주는 것이 급선무가 아닌가 싶다. 대선주자들은 유행에 편승해 무책임하게 공약만 남발하지 말고 새로운 변화에 신속하고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정책의 틀부터 짜줄 필요가 있다. /cso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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