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이란 작품을 함께 하게 돼서 뜻 깊었어요. 의미 있다고 해야 할까요. 작게나마 제 행동 하나가 크게 영향을 끼친다는 걸 깨닫게 된 작품이죠. ”
지난 1일 개봉한 영화 ‘눈길’(감독 이나정)은 여전히 제자리걸음 중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다룬 작품. 함께 아파하고, 위로하고 위로 받으며 버텼던 소녀들의 이야기 중심엔 배우 김새론이 있다.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 ‘뜻 깊은 작품이 만들어지는구나’란 생각을 했다는 김새론은 ”워낙 민감한 부분이니까 제가 힘들까봐 걱정하시는 주변 분들도 많았지만, 다들 큰 결심을 했다고 이야기해주면서 같이 응원해줬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작품 출연을 결정 짓고 관련 자료나 영상들을 찾아본 김새론은 “더 늦기 전에 빨리 이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했다.
“위안부 소재의 애니메이션부터 단편이나 다큐멘터리도 많이 봤어요. 또 중학교 역사 선생님께 많이 여쭤보기도 했고요. 학교 친구들이 수행평가로 단체로 관람하기도 했어요. 영화가 개봉하면 극장에서 다시 한번 꼭 보겠다는 말도 해줬어요.
영화 속 영애가 저인 걸 알고 봤는데도 울었다고 하던걸요. 제가 기억에 남았던 한 마디는 ‘연기 해줘서 고마워’란 말이었어요. 저도 많이 조심스러워했고, 걱정도 많이 했던 작품이었는데, 이렇게 친구들이 고맙다고 해주니까 기분이 색달랐어요.”
일본어에 익숙하지 않았던 김새론은 일본어를 완벽하게 소화하기 위해 세심한 노력을 기울인 것에 이어 지방 방방곡곡을 돌아다닌 힘든 촬영에도 불평 한 마디 없이 일정을 소화해냈다고 한다.
“영화 속에서 일본어를 하는 장면이 유독 많은데, 사실 제가 일본어를 하나도 몰라요. 일본어를 잘한다고 봐주셨으면 감사한거죠. 촬영 전에 일본어로 된 대사들을 녹음해 들고 다니면서 입에 붙을 수 있게 많이 연습했어요. 일본어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억양이나 음의 높낮이가 익숙해질 수 있도록 신경 썼어요.”
“실제 눈길에서 촬영을 해야 해서, 현장이 많이 추웠어요. 근데 그럴 때마다 ‘그 시대 소녀들은 우리랑 비교도 못하게 더 힘들었을텐데’란 생각이 자꾸 들어서 감히 힘들다는 말을 하지 못했어요.”
극중 영애는 종분(김향기 분)에게, ‘죽는 게 무섭냐, 죽지 못해 사는 게 더 무섭다’ 라는 말을 한다. 당시 끔찍한 상황을 겪었던 소녀들의 속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장면이다. 역사적 사실에 대해 하나 하나 알아갈수록, 작품에 몰입하면 할수록 김새론은 “마음이 너무 아팠다”고 했다.
“영화 속 영애랑 종분이 두 소녀가 지금 저랑 비슷한 또래였어요. 그런 고통을 겪은 소녀들을 보면서 아직까지도 진행 중인 민족의 아픈 상처, 이런 상황들이 떠올라 너무 화가 났어요. ‘죽는 게 무섭냐, 죽지 못해 사는 게 더 무섭다’ 이런 말들이 사실 열 다섯 어린 소녀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니잖아요. 그런 감정들을 최대한 이해하고 촬영하고자 했어요.”
위안부로 끌려간 영애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극도로 부정하다가 무감각해진다. 위험천만한 얼음 강에 뛰어들어 차가운 세상을 등지려고 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곁에 있는 소녀들에 의해 결국 마음을 열게 된다. 물론 아픈 상처는 결코 없어지지 않은 채 그녀의 마음을 옥죄인다.
“이제는 우리가 할머니들을 위로 해드려야 할 차례인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전한 김새론의 진심은 통했다. 김새론은 영화 ‘눈길’을 통해 중화권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중국 금계백화장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속 깊은 18세 배우 김새론은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보고 느꼈다”는 점에서 더욱 뜻 깊은 상이었다고 뒤늦은 수상 소감을 전했다.
“상을 받는 것은 언제나 뜻 깊지만, 특히 ‘눈길’로 해외에서 상을 받게 돼 더 뜻 깊은 것 같아요. 해외에서도 이 작품을 알아봐줬다는 것 자체가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보고 느꼈기 때문 아닐까요. 작은 관심과 노력이 결국 큰 힘을 발휘할거라고 생각하는데, ‘눈길’이란 작품에 이렇게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시니 나중에 정말 큰 힘이 될 거라 믿어요.”
‘눈길’ 이란 작품은 그에게 위안부 문제에 대해 눈과 귀를 보다 활짝 열게 만든 특별한 영화로 자리하게 된다.
“물론 영화를 찍기 전부터 알고 있었던 부분도 있지만 찍고 난 다음에 더 많은 관심이 생긴 게 사실이에요. 뉴스를 보다가도 관련 기사나 소식이 있으면 꼭 한 번은 찾아서 읽어봐요. 친구들과도 위안부 문제에 대해 얘기하기도 하죠. 친구들도 함께 관심을 갖고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희망나비팔찌, 뱃지등을 맞추기도 했어요.”
2009년 영화 ‘여행자’로 데뷔해 당시 10살의 어린 나이임에도 강렬한 연기를 선사해 칸 국제영화제에 초청되어 뜨거운 격찬을 받은 배우 김새론은 영화 ‘아저씨’(2010)로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아역배우로는 이례적으로 대한민국 영화대상 신인여우상 및 다수의 상을 수상, 평단의 극찬을 받으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배우로 떠올랐다.
이후 ‘이웃사람’(2012), ‘만신’(2013), ‘도희야’(2014) ‘맨홀’(2014) 등의 작품에서 두각을 나타낸 김새론은 현재까지 영화뿐 아니라 다수의 드라마에 출연해 연기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천상 배우의 자질이 다분해 보이는 그는 “연기를 너무 잘하시는 전도연, 고현정, 이병헌 선배님을 좋아한다”고 했다. 이어 “기억에 남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꿈을 밝혔다.
“여운이 남고 기억에 남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마음으로 ‘훅’ 와 닿는 배우들은 오래 기억이 되잖아요. 그런 것을 뭐라고 표현 해야 할까요. 깊이감이라고 해야 하나요? 사실 저도 깊이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런데 말이 ‘깊이’지 아직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몰라요. 우선은 그런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마음을 ‘훅’ 당길 수 있는 배우요. 일찍 찾은 배우의 길을 후회해 본 적은 없어요. 너무 재미있거든요. ”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실력을 인정받은 김새론 배우가 알려주는 ‘연기 잘하는 팁’이 흥미로웠다. “설거지를 하면서도 배우의 연기가 보고 들리는 것”이 바로 비법이라면 비법이었다.
“영화는 다 갖춰져 있어서 배우가 조금만 움직여도 보이는데, 드라마는 달라요. 드라마는 (시청자들이)설거지를 하면서도 배우의 연기가 보고 들려야 한다고 들었어요. 정확히 누구의 말인지는 모르겠는데, 당시 들으면서 ‘오! 일리가 있네’라고 반응했던 기억이 나요.”
김새론은 스스로를 “기본적으로 왈가닥 성격이구요. 여기에 플러스 일할 때만 조금 완벽주의 성향이 있어요. 또 전체가 아닌 몇 부분만 섬세한 사람이다”고 자평하며 웃었다.
‘눈길’이란 제목에는 눈길(snow road) 그리고 ‘눈길’(look) 이렇게 두 가지 의미가 내포돼 있다. 첫째는 두 소녀가 걸어가야 했던 차갑고 시린 ‘눈길’을 나타낸다면, 두 번째는 우리가 누군가에게 관심을 가지고 ‘눈길을 주다’는 의미이다.
‘눈길’이란 영화의 제목에 담긴 두 가지 의미를 알려주던 김새론은 “나에게 ‘눈길’은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이야기다.”며 “많은 이들이 절대 이 이야기를 잊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전국의 모든 (차가운)‘눈길’을 찾아 다닌 이나정 감독의 진짜 의도는 그렇게 전국민의 마음에 작은 울림을 일으키고 있었다.
/서경스타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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