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 경영사에 가장 큰 족적을 남긴 기업은 분명 삼성일 것이다. 삼성의 성공은 한국 경제의 성공인 동시에 전 세계적으로 개도국 산업화의 신화로 평가되고 있다. 따라서 삼성전자의 글로벌 사업 모형을 파악하는 것은 학술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한국의 다른 기업이나 개도국 기업들에 중요한 시사점을 줄 것이다. 특히 본고에서는 객관적이고 독립적인 시각에서 삼성전자의 글로벌 사업을 엄밀히 평가해 긍정적인 측면과 함께 한계점도 동시에 조명하고자 한다.
삼성전자의 글로벌 사업의 출발점은 서구 정보기술(IT) 기업과 달리 “무엇을 생산할 것인가”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삼성전자가 우리나라 대부분의 수출 기업과 유사하게 대규모 생산시설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삼성전자는 자체 생산시설뿐만 아니라 계열사의 시설을 포함한 대규모 수직적 계열화된 생산시설의 가동률을 높이는 것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는 개발과 마케팅에 초점을 맞추는 미국 IT 기업과 다른 특성이다.
삼성전자에는 대규모 생산 관련 자산이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강점인 동시에 리스크 요인이 될 수 있다. 특히 삼성전자는 역동적인 시장 환경 속에서 시장과 기술 변화에 따른 생산 자산의 진부화 위험에 크게 노출돼 있다. 따라서 삼성전자는 대규모 수직 계열화된 내부 생산-개발 체제를 시장 기호와 변화에 적절히, 그리고 신속하게 대처해야 하며 이를 위한 ‘시장대응(market-driven)’ 역량이 가장 우선되는 역량이다.
시장대응 역량은 고객의 미래 기대 욕구 충족과 시장 변화에 초점을 맞추는 ‘시장창출(market-driving)’ 역량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대체로 서구 기업들은 아시아 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장창출에 유리하다. 특히 IT 산업에서는 미국이 선도시장적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한국 기업은 고객 기호와 시장 동향을 파악하는 데 문화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삼성은, 적어도 과거에는, 시장창출보다는 기존 시장에서 표출되고 있는 욕구에 부응하는 시장대응이 중요하다.
그러면 삼성이 시장 기호와 변화에 신속하게, 그리고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서 어떠한 방법을 활용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삼성은 사업 기회와 기술 동향을 효과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우선 선진 기업에 완제품 또는 부품공급자로 출발해 산업 동향과 고객 욕구를 파악하는 방법을 활용했다. 예를 들면 과거에는 주문자생산방식, 즉 OEM 생산 협력을 통해 완제품을 공급했고 최근에는 애플이나 다수의 IT 기업에 핵심 부품을 공급하는 관계를 통해 기술 및 시장 정보를 확보할 수 있었다.
둘째, 삼성은 소수의 기획 제품보다는 다수의 제품 판매를 통해 고객의 반응을 파악하고자 했다. 특히 삼성은 초기 스마트폰 경쟁에서 소수 모델에 치중하는 애플과 달리 다양한 화면 모델을 출시하는 전략을 사용했다.
셋째, 전사적 시장지향성을 높임으로써 시장 정보에 관한 직원들의 관심을 제고시키고자 했다. 구체적으로 삼성전자는 신제품 개발에 최신 시장 동향이 반영되게 하기 위해 특별히 노력했다. 이를 위해 삼성전자는 개발인력에 대한 시장지향성 교육을 강화했고 신제품 개발도 내부 경쟁을 통해 고객 기호와 기술 동향을 파악하도록 관리했다.
넷째, 삼성은 수직적으로 통합된 생산-개발-판매 체제를 통합적으로 관리하고자 했다. 삼성은 특히 부서 간 업무 조정을 원활하게, 그리고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했다. 동시에 시장 변화와 기호에 부합하는 다양한 제품을 개발·생산·판매할 수 있도록 유연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삼성은 그룹 차원에서, 그리고 개별 회사 차원에서 중앙집권적 경영을 추진해왔다. 삼성은 전통적으로 통합적 그룹 경영을 위해 회장실 아래 그룹 전략기획 업무를 담당하는 조직을 둬왔다. 동시에 삼성은 부서 간 협업 체제를 구축해 업무 추진에 부서 간 정보 교류 및 참여를 제도화해왔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하면 기본적으로 삼성의 성공은 한국적, 그리고 아시아적 특성에 기반을 둔 경영방식과 전략에 기인한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삼성은 서구 기업과 달리 제조업에 기반을 두고 제조업의 강점을 적절하게 활용한 동시에 제조업 중심 사업 구조의 한계점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이뤄냈다.
그러나 최근 미래전략실 해체와 통합관리 체제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형태의 사업 모형이 모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삼성 모형이 가지고 있는 태생적 한계도 존재한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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