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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헌재가 품어야 할 결기

박현욱 여론독자부 차장





헌법재판소의 수난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 탄핵 심판정에서 대통령 변호인단이 쏟아낸 막말과 소란, 법정 밖의 공공연한 심판 불복 선동과 재판관 신변 위협까지 어느 때보다 헌재의 권위는 큰 상처를 입었다.

탄핵 심판이 대통령 파면 여부를 판가름하는 중차대한 사법 절차인 만큼 일반 재판과 다를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대통령 측 변호사가 재판관들을 향해 ‘그럴 거면 왜 헌법재판관씩이나 해요’라든지 주심 재판관을 거론하며 ‘국회 측 수석대리인’ ‘법관이 아니다’라는 폭언을 서슴지 않고 재판을 방해하는 행위를 정상으로 볼 수는 없다. 심각한 재판정 문란에 헌재가 대응한 것은 고작 법정 밖에서 언론을 통해 더 소란을 피우면 감치하겠다는 으름장뿐이었다.

법정 질서 유지는 재판장의 몫이다. 헌법재판소법에도 명시돼 있다. 재판장은 심판정의 질서를 잡고 변론을 지휘한다. 또 헌재 심판규칙에 따라 필요하면 진행되고 있는 구두변론도 제한할 수 있다. 법정 질서 유지를 해치는 자를 퇴정, 감치시키고 과태료를 부과하는 권한은 헌재법이 준용하는 법원조직법에 적시돼 있다. 일반 민형사 재판에서도 볼 수 없는 소란과 모욕적 발언을 최고 실정법규범인 헌법의 분쟁을 다루는 기관이 내버려둬도 된다는 근거는 어느 법 조항에도 없다.

헌재의 권위 훼손은 결정 불신의 구실이 될 수 있다. 심판 불복 세력이 원하는 바이기도 하다. 불복의 기운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오죽하면 탄핵 심판 불복의 빌미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재판관들이 전원 일치 결정을 내릴 거라는 말까지 나돌고 있을까. 국론 분열을 막아야 한다는 여론에 재판관들이 받는 압박감을 어림짐작하지만 이런 이유가 재판관이 자신의 합리적 판단에 근거한 소수의견을 접고 다수의견 쪽으로 선회하는 것을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그리한다면 이미 변론 과정에서 헌재가 입은 상처를 더 악화시키는 결과가 될 뿐이다.



헌재를 시험대에 올려놓고 흔들 일이 아니다. 헌재는 이번 탄핵 심판 이후로도 유사한 결정에 수없이 맞닥뜨릴 것이다. 사법적 헌법보장기관, 최종심판기관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하지 않아야 한다. 헌재가 결기 있게 대처하도록 제도적으로도 보완이 필요하다. 현재 헌법상 9명의 재판관 가운데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는 3명과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3명을 제외한 국회가 선출하는 3명만이 국회의 동의를 얻을 뿐이다. 그동안 법학자들이 지적했듯 결정에 중대한 정족수인 ‘6인’이 인사청문만 거치고 국회 동의 없이 재판관으로 임명되는 문제점도 차후 개헌에서 논의해야 한다.

길고 긴 겨우내 달린 탄핵열차의 종착역이 어렴풋이 보인다. 열차는 인용이든 기각이든 어느 한 역에서 궤도 끝을 넘지 않고 멈춰야 한다. 탄핵 여정을 끝내면 경제·외교안보 문제를 잔뜩 실은 대선열차가 기다리고 있다. 종점에 눌러앉을 여유가 없다.

/ hw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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