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혁신의 대명사’는 단연 스티브 잡스다. 그는 단순히 더 나은 하드웨어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휴대폰이라는 하드웨어를 매개로 한 새로운 경험을 판매했다. 듣는 전화기에서 보는 전화기로, 더 나아가 만지고 음악을 듣고 영화를 감상하는 기기로 단숨에 진화시켰다. 그래서 시장을 선도하는 혁신가로 ‘퍼스트 무버’라는 별칭까지 붙었다.
최근에는 일론 머스크가 뒤를 잇고 있다. 머스크는 자신의 꿈을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을 하자’로 정하고 꿈을 실현하기 위한 기술로 인터넷 기술, 대체에너지 기술, 그리고 우주탐사 기술을 설정했다. 잡스가 정보기술(IT) 분야에서 기존에 있던 기술에 생명과 향기를 불어넣어 새로운 문화를 창출했다면 머스크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영역을 창출하고 우주로 외연을 확장하고 있다. 스페이스X의 재사용 로켓, 테슬라의 전기자동차, 비행기보다 빠른 열차 하이퍼루프, 그리고 달 관광과 화성 탐사계획… 이런 시도에 힘입어 그를 ‘미래의 설계자’라 부른다. 머스크와 관련된 최근의 뉴스를 접하다 보면 진정한 퍼스트 무버요 이 시대 ‘혁신의 아이콘’이라는 생각이 든다.
머스크가 우주산업에 뛰어든 것은 단순히 어릴 적 꿈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주산업으로 신산업을 창출하고 ‘돈을 벌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지난달 27일 머스크는 스페이스X가 제작한 우주선으로 달나라에 2명의 관광객을 보내겠다는 깜짝 발표를 했다. 내년 말께 달 주변을 돌고 지구로 돌아오는 ‘달 여행’에 지원한 민간인 2명은 이미 많은 돈을 냈다. 우리나라는 내년 말이 돼도 달 탐사선 발사는 꿈도 못 꾸니 부러울 따름이다.
아마존 창업자인 제프 베저스도 마찬가지다. 그는 블루오리진 회사를 통해 우주관광뿐 아니라 달까지 가는 택배 배송 서비스를 구상하고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에 협조를 구했다. 인류의 영구적인 달 정착을 위해서라고 한다. 공상과학소설 같은 이야기지만 현실이 될 공산이 크다. 30년 전 ‘백 투더 퓨처’ 영화가 보여준 공상 같은 현실이 이미 일상이 된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공학을 ‘미래를 창조하는 학문’이라 정의하기도 한다.
세계 우주 시장은 최근 10년간 연평균 5.1%씩 성장해 지난 2006년 2,069억달러에서 2015년에는 3,229억달러를 기록했다. 이제는 우주산업에서도 경제성 있는 우주개발이 화두다. 머스크의 스페이스X가 촉발한 발사비용 대폭 저감 시도에 유럽은 아리안6, 일본은 H-Ⅲ라는 새로운 저비용 로켓 개발로 대응하고 있다.
경제성 있는 우주개발과 함께 인공위성·발사체 등은 국가 주도에서 산업체 주도로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 일본은 1996년부터 발사체 부문의 민영화를 준비해 2003년 이후에는 산업체 주도 구조를 정착시켰다. H-Ⅲ 로켓 개발도 미쓰비시중공업(MHI)이 주도하고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는 이를 관리·감독하고 있다. 인공위성은 소형 위성을 활용한 우주 인터넷 사업, 우주 쓰레기 처리 사업 등 다양한 분야가 민간 기업을 통해 추진되고 있다. 스페이스X 등 민간 기업에서 상업용 발사체의 재활용 기술 개발과 준궤도를 활용한 우주관광 사업 및 우주 인터넷, 우주자원 채굴 등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에 과감하게 투자하고 있다. 이렇듯 ‘뉴 스페이스’로 불리는 우주 벤처 붐이 조성되면서 우주 시장의 급성장이 점쳐지고 있다.
때마침 우리나라의 차기 우주개발 중장기계획 수립을 위한 기획위원회 착수회의가 최근 미래창조과학부에서 열렸다. 뉴 스페이스 시대에 국내외의 여건 변화를 제대로 반영해 우주 전문기관인 한국항공우주연구원(KARI)과 여러 우주산업체가 동반 성장하면서 우주 시장에서 코리아의 몫을 확대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우주 분야의 종사자들은 정말 열심히 하고 있다. 그런데 ‘열심’만으로는 부족하다. ‘패스트 팔로어’에서 퍼스트 무버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속도가 아닌 방향이 중요하다. 이번만큼은 제대로 우주개발 방향을 잡기를 간절히 바란다. 필자도 기획위원으로 참여하고 있어 어깨가 무겁다.
허환일 충남대학교 항공우주공학과 교수·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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