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첫날인 3월 1일 38만 명을 동원하며 역대 스릴러 영화 오프닝 스코어 1위를 기록한 영화 ‘해빙’은 현재 누적 관객 수 104만명을 넘어서며 심리스릴러라는 새로운 장르적 재미를 선사하는 중이다.
개봉 전 삼청동에서 진행된 ‘해빙’ 인터뷰 현장에서 만난 조진웅은 “‘해빙’이 버림받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긴장된 모습을 보였다. 그의 우려가 무색하게 오프닝 스코어는 나쁘지 않다. 그가 땀 흘리며 씨를 뿌리고 농사를 지은 노력을 관객들 역시 함께 공감하고 알아준 것.
그의 말 대로 ‘외로운 아이’ 해빙은 삶 자체가 서스펜스로 가득한 곳. 지금의 한국 사회를 돌아보게 만들며 신선한 재미를 이끌어내고 있다. 특히 조진웅이 그려낸 예민하고 섬세한 내면의 불안한 풍경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관객들이 쉽사리 눈길을 거두지 못하게 한다.
연쇄살인사건의 메카에 세워진 신도시로 밀려난 몰락한 의사로 분한 조진웅은 정중동의 섬세한 연기와 신경질적인 날 선 이미지의 모습으로 기존의 그의 매력에 덧붙여 관객이 처음 접하는 다른 모습, 다른 인물을 들고 나왔다.
바짝 곤두선 바이올린의 현처럼 팽팽하고 예민한 심리 상태, 누구도 믿을 수 없이 의심의 한가운데 놓인 인물의 시시각각 변해가는 감정과 의심, 그리고 나름의 반격까지 시종일관 관객의 뇌를 점령해 들어온다.
이중적인 미스터리의 키워드 영화인 이번 작품은 시체를 둘러싼 살인의 비밀과 무의식 저 아래 봉인되어 있었던 살인 행각의 비밀이 맞물리는 구조를 취했다. 신구 김대명 송영창 이청아의 적재적소의 연기도 작품을 빛낸다.
조진웅은 남다른 애정을 쏟아 부은 이번 영화에 대해, “심리스릴러 ‘해빙’이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관객들에게 재밌는 화두를 던질 것 같다.”고 말했다. 남에게 이해시킬 수도 없고, 혼자서는 해결할 수도 없는 의혹과 공포의 한 가운데, 승훈의 시선과 심리를 쫓아가는 영화는 그렇게 여타의 스릴러 영화와는 달랐다 .
“평범한 사람이 자신도 몰랐던 잔혹한 본능과 마주치는 순간을 보여주는 영화죠. 이렇게 깊게 들어갈 줄 몰랐지만 배우로서는 굉장히 신명나는 작업인 건 분명했어요.”
조진웅은 ‘해빙’을 ‘스릴러 셰프 이수연 감독이 만든 시그니처 메뉴’ 로 ‘온리 원’ 심리스릴러 영화로 소개했다. 비밀이 없는 사람은 없다. 승훈의 눈에는 모두가 의심스럽다.다음 상황이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고, 이들이 가진 비밀이 도대체 무엇일지 실체를 궁금하게 하면서, 서스펜스를 만들어내고 ‘해빙’의 재미를 완성한다.
영화 ‘해빙’은 주인공이 절대악인 살인마를 찾고 추격하는 한국 스릴러의 패턴과는 다르다. 살인의 공포는 승훈과 함께 관객 또한 숨쉴 틈 없는 서스펜스로 조이며 심리스릴러의 새로운 재미를 선사한다. 여기에 제각기 다른 캐릭터들의 비밀이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오르며 퍼즐처럼 맞춰져 드러나는 사건의 실체는 관객들이 미스터리에 빠져드는 중심축으로 작용한다. 물론 주인공이 작품의 기본축인 승훈의 심리를 제대로 포착해내지 못하면 이 모든 퍼즐은 제 자리를 찾아가지 못하게 된다.
“말할 수 없는 내면의 공포감과 불안감을 미묘하게 건드려야 했죠. 계산되지 않은 연기가 나올 때도 있었어요. 심적인 에너지가 엄청 증폭 돼야 나올 수 있는 연기들이 있었거든요. ‘이렇게까지 표현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신명나고 참 독특한 경험이었어요.”
본인과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승훈을 이해하기 위해 한걸음씩 다가간 조진웅은 “승훈은 실제 내 모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캐릭터”라고 표현했다.
“캐릭터를 처음 접했을 때 ‘나랑 안 맞네’라는 느낌이 먼저 들었어요. 왜, 새 옷을 입을 때 사이즈가 안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안 어울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잖아요. 바지 밑단은 너무 큰 것 같은데, 상의 목은 막 조이는 느낌이 들어서 체질상 안 맞는, 딱 그런 느낌이었죠.
승훈이 너무 극단적인 인물이잖아요. 관객들에게 호소할 수 있는 건 이 인물이 처한 상황뿐이잖아요. 난 이렇게 행동 할 것 같지 않다고 말하면 감독님은 그건 ‘승훈’이다고 말하셨어요. 그럼 ‘아 승훈이니까, 여기서 이렇게 까지 한다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아닌 것 아닌가? 이러다 다시 ’승훈이니까‘란 생각으로 돌아오면서 더 외로워졌어요.”
그렇게 의혹과 공포의 한 가운데 조진웅이 서 있었다. 고민과 고통의 긴 터널을 통과해서일까. 그의 외침은 더욱 절실했다. “부디 배우인 제가 느꼈던 신명이 관객들에게도 어느 지점에서는 통할 수 있었음 해요. 자평을 하자면 완성본을 보고 이정표 따라 잘 완주한 느낌을 받았어요. 의도한 방향대로는 온 것 같아요. ‘조금만 더 했으면’ 하는 아쉬운 부분도 많지만 그래도 안도합니다. 그럼에도 언론과 관객의 평가 앞에선 겸허해집니다.”
조진웅은 ‘해빙’을 두고 계속 마음이 가는 ‘외로운 아이’라고 표현했다. “우리 ‘해빙’이 너무 예쁘죠? 이렇게는 말 할 수 없어요. 이 아이는 더 예민한 것 같고, 되게 불안해하면서 아빠 허벅다리 뒤에 숨어있는 아이 같다고 할까요. 손님이 와서, 아빠가 ‘이리로 나와~ 괜찮아’ 이렇게 해야 겨우 쭈뼛 쭈뼛 옆으로 살짝 나올 것 같고, 이 아이 좀 보세요. 하고 말 하면 다시 숨을 것 같은 아이죠. 사실 나에겐 내 손으로 낳은 내 아이인데 (마음 속으론)얼마나 예쁘겠어요. ”
“배우는 농사꾼”이라고 말하는 배우 조진웅은 좋은 열매, 튼튼한 씨를 발판으로 계속 작업 중이다. “좋은 열매를 관객들과 나누고 싶다”는 바람도 빼 놓지 않았다. 그럼에도 스스로에겐 “멜로 DNA가 없다”며 “감성 멜로 영화를 하는 건 쉽지 않다.”고 말한다.
“저라고 그런 감성이 없겠나요? 그런 영화를 보면 ‘찌릿 찌릿’ 하는걸요. 저에게 잘 어울리는 멜로가 오게 된다면 심사숙고 해볼 의향은 있죠. 멜로는 쉽지 않은 장르인 건 분명해요. 제일 선호하는 건 코미디 쪽이죠. 물론 코미디가 어려운 장르이긴 하지만 멜로보단 코미디를 볼 때 몸이 보다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것 같아요. 코미디 연기를 하는 배우를 옆에서 볼때면 제 몸이 근질 근질 하니까요.”
1997년 연극배우로 연기를 시작한 조진웅은 1999년 MBC 드라마 ‘왕초’를 통해 본격 데뷔했고 이후 2004년 ‘말죽거리 잔혹사’(유하 감독)로 충무로에 입성했다. 영화 ‘비열한 거리’, 범죄와의 전쟁‘, ’화이‘, ’군도‘, ’허삼관‘, ’아가씨‘ 등 40편 이상의 영화에 출연했다.
특히 2017년에는 ‘해빙’ 개봉 이후, ‘보안관’(김형주 감독) ‘대장 김창수’(이원태 감독)까지 3편의 영화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기회가 된다면 그의 팔딱 팔딱 살아움직이는 날 것의 매력이 가득한 연극 무대를 만날 수도 있겠다.
“열일 배우요? 배우가 연기하는 건 당연한 거죠. 연극이요? 당연히 연극배우인데 연극도 해야죠. 제 전공이 연극이잖아요. 하하. 연극은 (고향인) 부산에서 할 거예요. 언제가 될지 기약은 못하겠어요. 제가 연극하면 다 죽어요. 하하.”
/서경스타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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