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업의 노사 임금협상인 ‘춘투(春鬪)’에서 주요 대기업들의 임금인상 폭이 최근 4년래 가장 낮은 수준에서 타결될 것으로 전망된다. “적어도 지난해만큼 올려달라”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요구에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보호무역 정책에 대한 우려와 지속되는 소비부진으로 기업들이 임금인상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디플레이션 탈출을 위해 정부가 주도해온 일본의 임금상승 동력이 빠르게 약화하고 있다.
15일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현지 언론은 2017년도 춘계 노사교섭에서 주요 대기업들이 4년 연속으로 기본급 및 보너스 인상에 동의했지만 임금인상 폭은 지난 2013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에 그쳤다고 보도했다. 아베 총리는 취임 직후인 2013년부터 국내 소비진작 명목으로 주요 대기업에 직접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이른바 ‘관제(官製) 춘투’를 거듭해왔다.
대기업 임금인상의 바로미터격인 도요타자동차의 경우 올해 기본급 인상폭은 노조가 요구한 월 3,000엔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월 1,300엔에 그쳤다. 이는 전년도 인상액(1,500엔)보다도 200엔 낮은 금액이다. 지난해 노조 요구대로 월 기본급 3,000엔 인상에 나섰던 닛산자동차도 올해는 절반인 1,500엔 인상에 그쳤다.
전기·전자업계도 상황은 비슷하다. 히타치와 파나소닉·미쓰비시전기 등은 전년도의 1,500엔보다 낮은 월 1,000엔 인상을 결정했다. 업황이 좋지 않은 조선업계도 미쓰비시중공업·IHI 등 대형 조선사 7개사가 월 4,000엔 인상 요구에 월 1,000엔 인상 결정을 내렸다.
이처럼 대기업들이 정부 요청에도 지난해보다 임금인상 폭을 대폭 낮춘 것은 불확실한 세계 경제 여건과 엔화가치 상승으로 경영 부담이 커지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특히 트럼프 정부가 보호무역 정책을 구체화할 경우 주력 시장인 미국에서의 경영전략 전환이 필요해지는 만큼 인건비 증가로 이어지는 기본급 인상에 적극 나서기 어려웠다는 기업 측 목소리가 높았다. 또 아베노믹스가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관제 춘투의 동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아사히신문은 “임금인상 폭이 지난해보다도 낮은 것은 아베 정권이 추진해온 관제 춘투에 그늘이 졌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이수민기자 noenem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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