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시위와 탄핵을 거치면서 대의정치의 실패와 직접민주주의 확대가 많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시민들이 직접 정치권에 의제를 제기하고 국정에 반영시키면 더 민주적인 것이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의 정치과정은 훨씬 더 복잡하고 갈등적입니다. 촛불시위가 자칫 그런 현실을 간과할 수 있습니다.”
박찬표 목포대 정치언론홍보학과 교수는 최근 일련의 직접민주주의 확대 움직임에 대해 신중론을 제기했다. 박 교수는 “이번 촛불시위의 의제는 워낙 정당성 확보가 명확해 전 국민의 합의가 쉽게 이뤄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며 “그러나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들, 예를 들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문제 등을 시민들이 직접 의제로 내고 합의를 이끌어내려면 정말 어려운 문제”라고 말했다.
촛불과 태극기처럼 분열된 가운데 직접민주주의가 발전할 경우 일반 시민들의 충돌이 격화할 수 있다는 점도 우려했다. 박 교수는 “한국의 시민사회는 이념적 균열로 양분돼 있고 이 균열이 정파적 지지와 견고히 연계해 있다”며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직접민주주의는 시민들의 자치공간이 되기보다 정파적 시민들 간의 직접적 충돌의 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직접민주주의가 과연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었는가 하는 점도 진지하게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직접민주주의가 가장 발달한 지역 중 하나인 미국 캘리포니아 상황이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캘리포니아의 경우 시민사회 내에서도 힘이 있는 집단들, 조직이 있고 여론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이 강자로 등장했다”며 “이들이 전체가 아닌 각 그룹의 이익만을 추구하다 보니 교육·도로·에너지·전기 등 지역 상황이 엄청나게 망가지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국민소환제 역시 남용을 걱정한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에 대해 여기저기서 국민소환을 요청하면 그 갈등과 분열을 어떻게 풀어나갈 수 있겠느냐는 분석이다.
특히 직접민주주의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시민의 참여가 늘수록 ‘참여 불평등’도 확대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바쁜 사람들은 참여할 수 없고 결국 여유 있고 돈 있고 조직화된 사람의 참여가 늘게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박 교수는 직접민주주의 확대보다 대의민주주의의 발전을 강조한다. 말 그대로 국민의 뜻을 받드는(代議) 역할을 좀 더 잘할 수 있도록 개혁해나가자는 것이다. 시민의 정치적 의사표현이나 정치참여 기회를 가로막고 있는 각종 법과 제도를 바꿔나가자고 말한다. 국회의 비례대표성을 높이고 선거법을 고치는 것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 우리의 선거법은 지난 1958년 진보당을 막기 위해 만든 법이다. 선거운동 기간 중 당락에 영향을 미칠 일체의 행동이 불법이다. ‘정권 교체하자’고 구호를 외치는 것도 안된다. 이런 것 먼저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안의식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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