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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도시 ■ SK서린빌딩] 군더더기 없는 설계미학...오래될수록 빛 발하는 '클래식의 멋'

사진설명=서울시 종로구 종로 26 ‘SK서린빌딩’ 전경. 한국 1세대 건축가인 김종성 서울건축 명예대표가 그의 스승인 미스 반데어로에의 영향을 받아 설계한 건축물로 준공된 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세련미가 넘치는 건물로 남아 있다. 김종성 건축가는 공조기가 들어가 있어 중간 부분의 빛깔이 다른 측면이 정면보다 더 예쁘다고 설명했다. /권욱기자




SK서린빌딩에서 바라본 삼일빌딩(종로구 관철동). 한국 마천루의 효시로 불리는 삼일빌딩은 고(故) 김중업씨가 설계했으며 1970년에 준공됐다. 두 건축물 모두 미국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미스 반데어로에의 ‘시그램빌딩’의 영향을 받았다. 현대 오피스 빌딩의 전형으로 불리는 시그램빌딩의 영향을 받은 두 건축물이 30년이라는 시간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서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권욱기자


SK서린빌딩 4층에 위치한 ‘아트센터 나비’에 설치된 미디어아트 조형물. 4층에는 아트센터 나비뿐만 아니라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과 카페도 마련돼 있으며 일반인들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단, 주말에는 문을 열지 않는다./권욱기자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5번 출구를 나와 광화문우체국을 끼고 종각역 방향으로 200m 정도 걷다 보면 하늘을 향해 곧게 솟은 반듯한 직사각형 모양의 건축물이 나온다. 바로 ‘SK서린빌딩’이다.

그랑서울·타워8·디타워 등 2010년 이후로 준공된 각양각색의 건축물들이 화려한 위용을 자랑하며 들어선 종로 대로변에서 SK서린빌딩은 좀처럼 잘 눈에 띄지 않는다. 길을 걷는 사람들을 유혹하는 화려한 간판을 한 상점들이 시선을 끄는 다른 건축물과 달리 그 흔한 카페 간판조차 하나 없어 너무 점잖은 듯한 인상도 풍긴다. 발걸음을 재촉하는 도심 한복판에서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건축물이다. 요즘 같이 자신을 내세우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시대에 참 세상 물정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바로 이 튀지 않는 점이 바로 SK서린빌딩의 매력이다. SK서린빌딩은 쉽게 입고 버리는 패스트패션이 성행하는 시대에 오래도록 보관하고 입을 수 있는 클래식한 정장의 멋을 느끼게 해주는 건축물이다.

‘오래 보아야 예쁜’ 건축물

‘곡선 없이 꼿꼿’ 오피스 건축의 전형

준공 19년 지나도 세련된 매력 여전

SK서린빌딩은 세기말인 지난 1999년 준공됐다. 지어진 지 햇수로 19년째다. 1992년부터 설계를 시작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건축물이 기획된 시점은 2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놀라운 것은 바로 이 점이다. SK서린빌딩을 가까이서 보면 결코 오래된 건물 같지 않다. 같은 해인 1999년에 완성된 인근 종각역의 ‘종로타워’가 준공 당시 독특한 외관으로 이목을 끌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빛을 잃어가는 반면 SK서린빌딩은 그 반대다. 시인 나태주가 ‘풀꽃’이라는 시에서 읊은 것처럼 SK서린빌딩은 ‘자세히 보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고 예쁜’ 건축물이다. 이는 건축가 김종성이 추구하는 작품 세계이기도 하다. 김종성은 미국의 건축가인 미스 반데어로에로부터 수학한 유일한 한국인 건축가다. 미스 반데어로에는 ‘더 적은 것이 더 많은 것이다(less is more)’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는 그의 건축 세계를 잘 보여주는 표현이다. 그는 군더더기 없이 기본을 중시한 설계로 전 세계 오피스 빌딩의 전형(典刑)을 만들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SK서린빌딩도 미스 반데어로에의 대표작 중 하나인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시그램빌딩을 닮았다. 김종성 건축가는 “시그램빌딩과 SK서린빌딩은 건축물의 기본 구조를 건축미와 일치시키는 데서 시작했으며 곡선 없이 직선 형태로 꼿꼿하게 올라가는 순수한 형태를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여성의 복장에 비유하자면 화려한 옷은 1~2년만 지나면 유행이 지나 퇴색되기 마련이지만 정장과 같은 옷은 시간이 지나도 그 가치가 달라지지 않는다”며 “SK서린빌딩도 건축의 기본을 간직했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지나도 퇴색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유일의 건축전문기자로 불렸던 한겨레신문의 고(故) 구본준 기자는 SK서린빌딩을 가리켜 ‘검은색 정장의 신사’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스승의 작품을 있는 그대로 따라 한 것은 아니다. 그는 “시그램빌딩이 1958년에 준공됐기 때문에 SK서린빌딩과는 40여년의 시차가 있다”며 “그러한 시대의 변화를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시그램빌딩의 경우 수직부재(Mullion·건물의 겉유리를 붙이는 데 있어 지지대 역할을 하는 구조물)가 1.4m인 반면 SK서린빌딩은 3m라 비례감이 확연하게 다르다.

기능에 충실한 건축이 아름답다

네모반듯한 직선 형태로 공간 극대화

종로타워와 대지 비슷하나 연면적 커

김종성 건축가의 작품들을 보면 대부분 직선 형태의 외관을 하고 있다. 이는 건축물들의 기능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그는 “형태를 곡면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 중요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며 “그동안 주로 설계한 오피스 빌딩이나 교육시설은 딱히 곡면을 요구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특히 오피스 빌딩의 경우 곡면으로 설계하면 내부에 손실되는 공간이 많아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강조했다. 그런 점에서 보면 SK서린빌딩은 기능에 충실한 건물이다. 네모 반듯한 직선 형태의 건물이기 때문에 낭비하는 공간이 없고 업무 공간도 넓다. 실제 인근 종로타워와 비교하면 이 같은 특징은 두드러진다. 종로타워는 대지면적이 5,033㎡에 연면적(한 건축물의 바닥면적의 합계)은 6만653㎡인 반면 SK서린타워의 경우 대지면적은 종로타워와 비슷한 5,774㎡지만 연면적은 종로타워보다 훨씬 큰 8만3,802㎡다. SK서린타워의 연면적이 이렇게 커진 데는 다른 사연도 있다. 애초 계획된 SK서린빌딩의 높이는 23층이었으나 중간에 서린 재개발 사업의 조례가 완화되면서 지금처럼 36층으로 지을 수 있게 됐다. 지금도 종로구에서 가장 높은 160m의 건축물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이처럼 시대가 변해도 퇴색되지 않고 기능에 충실한 건축물을 추구한 덕분인지 김종성 건축가는 유난히 대기업 오너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애초에 그가 활동했던 서울건축 자체가 대우건설(옛 대우개발)의 내부 설계사무소로 시작한 회사였다. 이후 차츰 외부 일감이 늘어나면서 독립을 했지만 이후에도 SK와 현대차그룹 등 대기업들과 많은 일을 했다. 그는 현재 서울 삼성역 인근에 들어서는 현대차그룹의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의 설계 책임 건축가를 맡고 있기도 하다.

빌딩에 숨겨진 풍수 이야기



불의 기운 막으려 기둥에 ‘거북이발’

“풍수지리와 현대건축 원리 비슷해”

SK서린빌딩을 더욱 흥미로운 건축물로 만들어주는 것은 풍수지리에 얽힌 일화다. 대기업들이 미신으로 치부해도 좋을 풍수지리에 연연해 하는 것은 익히 알려진 이야기다. SK그룹도 예외는 아니다. SK서린빌딩은 불의 기운이 강한 터에 자리를 잡고 있다. 고(故) 최종현 회장은 이 같은 불의 기운을 막고자 사옥 네 귀퉁이 기둥 하부에 물결모양의 마감재를 적용해 수중의 왕인 거북이의 발 모양을 형상화했다. 또 청계천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주 출입구 계단에는 거북이 머리 모양을 만들기도 했다. 김종성 건축가는 “고 최종훈 회장께서 풍수지리에 관심이 커 이에 위배되는 일이 없는지 검토해달라고 부탁했다”며 “풍수지리라는 것이 현대 건축의 원리와 비슷하기 때문에 실제 설계 시에 이 같은 부분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다만 고 최종현 회장은 SK서린빌딩 준공을 1년 앞둔 1998년에 별세해 완성작은 보지 못했다.

풍수지리로 인해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항간에는 SK서린빌딩의 정문이 종로가 아닌 청계천 방향이라는 얘기가 돈다. 불의 기운을 다스리기 위해 물이 흐르는 청계천 방향을 정문으로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건축가 김종성과 건축주인 SK그룹 모두 종로 방향이 정문이라며 부인했다. 실제 준공 당시만 하더라도 청계천을 복구하기 전이라 지금과 같이 물이 흐르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설득력이 떨어지는 소문이다.

한편 SK그룹은 2005년 유동성 확보를 위해 SK서린빌딩을 외국계 투자자인 메릴린치 컨소시엄에 약 4,500억원에 매각했으며 2011년 2월 국민연금과 부동산펀드를 조성해 5,562억원을 주고 되사왔다. 고병기기자 staytomorrow@sedaily.com



미스 반 데 로어


김종성의 스승 미스 반데어로에

모더니즘 건축 거장...김종성과 토론토 금융가 건물 함께 설계도

건축가 김종성을 얘기함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그의 스승 ‘미스 반데어로에’다. 독일 태생의 미국인 건축가 미스 반데어로에는 모더니즘 건축(산업혁명 이후 평등한 사회적 분위기와 합리적인 생산과 소비활동이 확산되던 시대에 맞춰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지어진 건축물)의 거장으로 불린다. 그가 미스 반데어로에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서울대 건축학과 재학 시절 읽은 책을 통해서였다. 그는 “현재 명동 서울중앙우체국 뒤편 골목에 외국어 책만 파는 서점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현대 건축을 소개하는 책을 사서 사전을 찾아가며 열심히 읽다가 미스 반데어로에를 알게 됐다”며 “당시 그 책에 그가 설계한 일리노이공과대학(IIT)의 ‘미네랄스 앤드 메탈스 빌딩(Minerals and Metals Building)’ 건물이 있었는데 기둥과 보가 있는 한국의 목조건축과 맥이 닿아 있어 정신적인 일체감을 느꼈으며 시선을 빼앗겨버렸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 강렬한 기억을 잊지 못한 건축가 김종성은 결국 1956년 미스 반데어로에가 있는 미국 시카고 일리노이공대로 건너갔다. 하지만 그와 만나겠다는 꿈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미스 반데어로에가 학부 수업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부 과정을 마친 후에는 미스 반데어로에의 사무실(Office of Mies van der Rohe)에 지원했지만 자리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대학원을 다니면서 때를 기다렸는데 15개월 만에 마침내 연락이 왔다. 1961년 미국으로 건너온 지 5년 만에 드디어 미스 반데어로에와 함께 일을 하게 됐다. 그의 나이 26세 때다. 이후 김종성 건축가는 미스 반데어로에가 세상을 뜨기 전까지 8년 동안 함께 일을 하며 그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스승과 함께한 작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축물로 캐나다 토론토에 위치한 ‘도미니언 은행 본사와 본사 영업점’을 꼽았다. 그는 “토론토 금융 중심가에 위치한 건물이고 함께 설계한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물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고병기기자 staytomorrow@sedaily.com

미스 반데어로에가 설계한 일리노이공과대학(IIT)의 ‘미네랄스 앤드 메탈스 빌딩(Minerals and Metals Building)’. /사진=IIT 홈페이지


건축가 김종성이 그의 스승 미스 반데어로에와 함께 작업한 건축물 중 가장 기억에 남는다는 캐나다 토론토에 위치한 도미니언 은행 본사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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