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백억천 묘화궁전 나뭇가지 사이마다 위아래로 벌려있고 오백억천 동자들이 그 궁전에 유희하되 광명있는 마니주로 화만영락 장엄일세 팔종청풍 건듯 불어 보수보망 나는 소리 미묘하고 청철하여 백천풍악 진동하니 그 소리 듣는 자는 탐진번뇌 소멸하고 염불심이 절로 나며(~중략)’ (권왕가 ‘석문의범’ 하권257~)
극락세계의 궁전 묘사다. 복 지은 사람이 가서 나는 곳 극락이다. ‘금강경’에서 부처님은 말씀하신다.
겉모습으로 여래를 판단하지 말고
음성만으로 여래를 구별하지 말라
이런 사람은 잘못된 도를 구하나니
마침내 여래는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여래께서는 어떠실까. 선천적으로 타고나신 32가지 특징에다 후천적으로 80가지 마음을 끄는 요소들, 이를테면 표정·음성·걸음걸이·손짓·제스처 따위를 고루 다 지니셨다. 여기에는 안으로부터 배어 나오는 학문의 깊이와 능력·품격까지 포함된다.
부처님은 말씀하신다. 극락세계가 얼마나 장엄하고 아름다운지 그곳의 물과 공기 자연풍광이며 지어진 건축물들은 또 얼마나 멋진지 하나하나 자상하게 설하신다. 권왕가에 나오는 극락세계 묘사도 극히 일부분에 해당하지만 아, 오백억천의 묘화궁전이라니.
뒷자리 1,000을 빼고도 500억이라는 숫자는 어마어마하다. 우리나라 인구가 5,000만명이니 500억이면 그 1,000배에 해당하는 숫자다. 일반 건축물도 아니고 궁전이다. 아름다운 꽃으로 장엄한 궁전이 자그마치 500억개나 되는데 1가구 1주택이 아닌 1인 1주택인 셈이다. 이들 궁전 사이사이에 황금으로 꾸며진 화려한 나무들이 즐비하다. 거기에 500억 때 묻지 않은 동자들이 수행에 전념한다.
경전에서는 왜 이런 묘사가 필요했을까. 부처님 말씀에는 직접 보고 느낀 점을 표현하듯 한마디 한마디에 확신이 배어 있다. 눈으로 본 세계가 차지하는 힘이 말의 힘보다 큰 까닭이다.
머레이비언의 법칙은 캘리포니아대 앨버트 머레이비언(1939~ ) 심리학 교수가 발표한 시각·청각·내용에서 받아들이는 이미지 분석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에 따르면 이야기 내용보다 청각의 느낌이 더욱 강하고 청각보다 시각의 느낌이 더 강하다.
발표자의 이야기 내용이 7%고, 목소리가 38%며, 표정과 매무새가 55%다. 목소리에서 느끼는 청각과 모습에서 느끼는 시각을 빼면 이야기 내용에서 느끼는 것은 겨우 7%에 불과하다는 법칙이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힘줘 말씀하신다.
“55%의 시각에 의존하지 말라. 38%의 청각도 따르지 말라. 7%이지만 가르침의 내용에 충실하라.” 시각 청각에 의존하다 보면 비록 7%에 지나지 않는 중요한 내용을 놓칠 수 있다. 용어를 떠나 ‘머레이비언의 법칙’에 담긴 원리를 부처님께서 에둘러 말씀하신 것이다.
바야흐로 대선 시즌이다. 후보들은 물론이고 지원유세와 운동원들의 활약이 스포츠와 예술을 접목시킨 작품으로 승화될 것이다. 거기에 관계 맺기 서비스를 통해 거대한 파도가 출렁댈 것이다. 그래서 선거는 잘하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작품이 된다.
그럼 잘못하면 어떨까. 내 장점 드러내기에 앞서 남의 단점만을 들춰내려다 보면 네거티브도 만들어지고 장난이 아닐 것이다. 허우대와 목소리가 드러난 지지율만 따라가다 보면 정작 괜찮은 공약을 챙기지 못할 수도 있다. 꼼꼼히 따져가며 국민의 주권을 스스로 잘 챙겨야겠다.
동봉스님·곤지암 우리절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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