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전하는 행성은 구심력만으로도 궤도를 유지할 수 있다. 그 궤도를 바꾸려면 방법은 단 하나다. 그보다 강한 원심력으로 궤도를 이탈하게 하는 것뿐이다. 그런데 물리학에선 중심을 향하는 구심력은 실재하지만 원심력은 가상의 힘이라고 배운다. 바깥을 향하는 원심력은 우리가 상상하지 않는다면 존재하지 않는 힘인 셈이다.
여기 자꾸만 바깥으로 벗어나려 하는, 아니 바깥을 상상하게 하는 연극이 있다. ‘광대극’이라는 20세기적 장르를 내세운 연희단거리패의 ‘변두리극장’이다. 베르톨트 브레히트에게 영향을 준 서사극의 효시 카를 발렌틴이 남긴 20여개 단막극 중 10꼭지를 모아 만든 광대극(카바레트)이다. 짧은 극 속엔 세상을 향한 조롱과 연민이 교차한다. 날카롭게 폐부를 찌르면서도 시종일관 유쾌하다.
‘제본공’에서는 책을 회사에 보내기 위해 수십명과 통화하는 제본공의 모습을 통해 관료주의 사회를 비웃는다. 관객을 일으켜 세워 모든 질문에 ‘네’라고 답하게 하는 ‘아뇨’에서는 반박하는 법조차 잊은 우리의 모습을 거울처럼 비춘다.
총 10가지 이야기를 구성지게 풀어놓은 오동식 연출은 마지막 에필로그 장면에선 좀 더 노골적으로 주제를 드러낸다. “악보대로 연주해야 한다”는 지휘자와 “악보에 잘못된 게 있으면 우린 그대로 연주하게 될 테니 악보대로 연주할 수 없다”는 악사들이 팽팽하게 맞선다. 결국 지휘자의 권위에 복종하고 연주를 시작한 악단의 연주가 지나치게 크고 빨랐던지 극장이 무너져버리고 만다. 한참의 정적이 흐른 후 폐허 속에 한 연주자가 몸을 일으킨다. 악보를 던져버리고 연주를 시작한다. 광대들이 하나둘 일어나 악기를 든다. 음을 보태고 하모니가 만들어진다. 세상을 무너뜨린 복종의 음악이 붕괴된 세상을 일으키는 희망가로 바뀌는 순간이다.
이 작품은 6년 전 초연 당시에는 혹독한 평가를 받았다. 촌스럽게 웃기려 든다는 평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객석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극장을 나서는 관객들 중엔 “생에 최고의 연극”이라고 감탄을 표하는 이들도 많았다. 이를 두고 오동식 연출은 “시대가 불온한 탓에 연극의 메시지가 분명해진 것”이라고 진단했다.
모든 배우들의 연기가 탁월하지만 그중에서도 광기의 지휘를 펼치는 이승헌의 연기는 압권이다. 지난 21일 관객과의 대화에선 “무슨 열매를 먹었기에 그런 신들린 연기를 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 나올 정도였다. 이에 대한 이승헌의 답변은 이렇다.
“연극 바닥에 도는 얘기 중에 ‘하늘 저편의 풍경을 맛본 자는 절대 그곳을 떠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현실 너머의 무한한 상상의 세계를 엿본자는 현실의 각박함을 견디지 못한다. 나 역시 그 힘으로 연기하고 있다, 25년의 연기생활 동안 온몸의 솜털이 서면서 무대에 있는 배우들의 마음, 관객의 마음이 모두 보이는 그런 경험을 세 번 정도 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레오가 처음으로 파란색 알약을 먹었을 때 리얼리티를 보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 경험을 하면 자꾸 (무대를) 갈구할 수밖에 없다.”
‘변두리극장’이 막을 내리고 다음 작품인 채윤일 연출의 연극 ‘황혼’까지 공연을 마치면 게릴라극장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극장을 인수할 새 주인이 나타났고 4월16일(공교롭게도 세월호 3주기다)을 끝으로 폐관한다. (배우들이 공연 내내 펼치는 언어유희를 맛보기로 따르자면) 서울 종로구 혜화동 15-29번지, 그야말로 대학로 변두리 게릴라극장에서 열리는 ‘변두리극장’은 26일 이후로는 없다. 그러나 이후에도 게릴라 같은 광대들은 새 공간에 제 나름의 변두리극장을 마련하고, 변두리 특유의 자유분방한 공연을 펼칠 것이다. 변두리를 떠나지만 다시 또 변두리에 자리 잡아 궤도 바깥으로 세상을 잡아당기며 구심력에 저항할 것이다. 26일까지 게릴라극장.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