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오락 영화 ‘원라인’에서 겉으로는 순진한 얼굴을 하지만 속은 능구렁이 사기꾼인 민재를 연기한 임시완은 최근 서울경제스타와의 인터뷰 자리에서 한껏 ‘능청美+진솔美’를 발산했다. 내면에 잠재된 ‘민재스러움’이 고개를 내밀자 ‘넘사벽 엄친아’보다 도리어 친근하게 다가오는 배우였다.
“제가 직접 사기를 쳐보지 않아서 그런 쾌감을 정확히는 잘 모르겠지만, 워낙 사기를 당하는 역할의 배우분들이 리액션을 잘 해주셨어요. 그래서 민재가 돋보인 것 같아요.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가 이분법적으로 착하고 나쁜 걸 평가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농도가 어느 쪽이 더 짙은가를 보면 될 텐데, 민재는 아무래도 농도가 나쁜 쪽이겠네요. 민재가 워낙 다채로운 캐릭터이긴 한데 그 중에 진짜 모습은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의 모습이겠더라고요.”
“민재가 집에서는 무미건조하게 행동하잖아요. 집에 있는 그 모습은 저와 비슷한 것 같아요. 실제 저는 무뚝뚝한데 사회생활에서 그걸 고치려고, 밝게 보이려고 노력하죠. 밖에서 그렇게 발산하고 나면 사실 집에서는 지쳐있어요. 어떤 연구결과를 봐도 밖에서 사회생활이 많은 사람이 집에서는 로그아웃 상태라고 하더라고요.”
‘원라인’은 평범한 대학생 민재가 전설의 베테랑 사기꾼 장 과장(진구)을 만나 모든 것을 속여 은행 돈을 빼내는 신종 범죄 사기단 원라인을 결성, ‘작업 대출’계의 샛별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린다. 이 가운데 민 대리가 된 임시완은 박병은, 이동휘, 김선영, 박종환, 왕지원, 박유환 등과 속내를 알 수 없는 엎치락뒤치락 케이퍼무비를 완성시킨다.
“대본이 일단 재미있었어요. 기본적으로 돈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다보니 공감대도 많이 형성할 수 있었죠. 제 스스로도 이야기에 관심이 가더라고요. 그러던 와중에 감독님께서 미팅 때 저에게 칭찬을 굉장히 많이 해주신 게 결정타였죠. 감독님 언변이 너무 좋으셔서 칭찬이 기분 좋게 다가왔어요. 비슷한 또래의 할리우드 배우랑 비교하면서 제가 더 잘 연기한다고 해주시더라고요.(웃음) 칭찬받는 게 굉장히 기분 좋은 일이구나를 느꼈어요. 속아도 기분 좋게 속는 거죠. 지금까지도 저에 대한 칭찬을 많이 해주세요.”
영화 초반부터 천연덕스러운 작업멘트와 ‘슈렉 고양이 눈빛’으로 은행 여직원을 홀리는 임시완의 매력은 그만의 타고난 범죄 기술. 민 대리는 서민들의 대출을 돕는다(?)는 미명 하에 작업대출 신종 사기를 저지르는 원라인의 핵심 수법으로 활용하기에 더 없이 좋은 인물이다.
“별다른 레퍼런스는 없었어요. ‘진짜’를 표현하기 이전에 따라하게 될까 봐요. 대본과 감독님의 말씀에 충실했어요. 감독님 의도는 기존에 제가 가진 캐릭터를 고수하자는 거였죠. 다른 작품들의 사기꾼은 언변도 화려하고 날티도 나잖아요. 그런 이미지를 제하고 원래 제가 가진 이미지로 사기를 쳐보자는 거였어요.”
케이퍼무비 특성상 다채로운 배우들과의 이색케미는 빼놓을 수 없는 관전 포인트. 워낙 많은 등장인물 중 인상 깊은 신스틸러를 묻자 “다 너무 좋아요. 생각나는 대로 말하자면 일단 (박)종환이 형, 영화가 개봉하고서 많이 회자될 거 같아요. 일단 신선하잖아요. 종환 형은 제 계산을 항상 뒤엎었어요. 종환 형만의 예상치 못한 대사들과 호흡법이 나오는데 그게 너무 웃겨서 웃음 참기 힘들었어요. 자유자재로 애드리브 한 (이)동휘 형도 대단했고요. 손 잘린 어머님, 화상 입으신 분, 시계방 장물아비 아저씨 모두 인상 깊어요.”라고 세세한 배역까지 놓치지 않고 기억해낸다.
2012년 드라마 ‘해를 품은 달’부터 ‘미생’(2014), 영화 ‘변호인’(2013), ‘오빠생각’(2016) 등 5년간 10편 가량의 작품을 해오며 이제 연기에 꽤 익숙해졌을까 싶지만 이번 ‘원라인’으로의 범죄극 도전은 또 하나의 큰 숙제였다. 사기꾼으로 대변신한 그에게 급변한 자신을 마주하고 든 진짜 소감을 물어봤다. “제 연기가 아직 아쉽게 느껴지긴 해요.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고 처음 연기 변신을 해서 그런 것 같아요. 다른 장면들을 보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 같은데, 괜히 제가 나오는 장면을 보는 게 불편했어요.”
여전히 연기 면에 있어서 특유의 신중함과 겸손을 보이는 임시완인데, 개인적인 부분으로 화제가 이어지자 예상치 못한 발언이 나왔다. 굳이 자신을 포장하려하지 않고 객관성을 넘어 솔직 털털하게, 더러는 능청스럽게 ‘진짜 임시완’을 꺼내 보인 것.
“착한 이미지 덕에 수혜를 많이 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착하게 봐주셔서 좋죠. 저는 실제로 착하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감사해요. 저라는 사람이 그런 이미지에 맞춰 가고 있기도 한 것 같아요. 어쩌다보니 ‘엄친아’라는 이미지도 생겨서 ‘아니다’라고 부정하기 이전에 저를 잘 포장하려고 노력한 것도 있어요. 이런 게 살면서 피곤할 수도 있는데 ‘애초에 너는 나쁜 사람이야’라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낫겠다고 여긴 거죠.”
tvN ‘뇌섹남녀’ 검증 프로그램 ‘문제적 남자’에서는 학창시절 모의고사 전교 1등, 학생회장 출신에 국립대 기계공학과에 몸담았던 수재인 그에게 지속적으로 러브콜을 보냈지만 여전히 출연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전제로 문제들을 어느 정도 주셔야 제가 포장되겠더라고요. 안 그러면 ‘엄친아’ 이미지가 거기서 다 깨지겠다고 생각했어요. 프로그램을 보는 건 재미있는데, 지금까지 어거지로 꾸민 이미지가 수포로 돌아갈 거 같아서 섭외에 쉽게 응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저는 나가려면 연출이 필요할 거 같아요.”라고 농담 섞은 해명을 늘어놓았다.
아이돌그룹 제국의아이들로 데뷔해 가수 생활만 하다 연기를 처음 접했을 당시의 두려움도 이제야 허심탄회하게 밝혔다. “요즘은 연기를 할 때 꽤 흥미가 있어요. ‘이번 신은 어떻게 찍힐까’ 앞으로가 궁금하기도 하고. 새로운 내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이 들어요. 제가 연기하는 스타일이, 저를 피곤하게 하는 스타일이었어요. 촬영 전날까지 완벽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잠을 못 잤을 정도니까요. 100%에 가깝게 준비해야 했어요. 미장센까지 다 채워서요. 그러니 스트레스였던 거죠. 긴장감과 스트레스가 지배적이다보니 ‘내가 이렇게 촬영하다가는 오래는 연기 못 하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어요. 그 때는 공부하듯 연기했다면 지금은 어느 정도 저를 풀고 연기해요. 이제는 오래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마지막으로 임시완은 지난 5년간 ‘배우 임시완’으로서의 자신을 평가해봤다. 첫 작품 ‘해를 품은 달’부터 차분하고 안정된 연기로 주연급 인기를 톡톡히 누린 후 대한민국 직장인들로부터 찬사 받은 ‘미생’, 천만 영화 ‘변호인’ 등 다수의 화제작을 낳으며 단기간에 역량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임시완은 “이제 시작”이라 자평하고 또 전망한다.
“현재 연기 방식을 바꿔가는 과정인데, 그 과정 자체에서 만족감과 흥미를 느끼고 있어요. 향후 계속 그 방식을 발전시킬 예정이에요. 궁극적으로는 ‘편안한 배우’가 되는 걸 목표로 삼고 싶어요. 이미지 변신을 억지로는 하고 싶지 않아요. ‘원라인’처럼 다른 감독님들께서 갈증을 느끼셔서 저를 찾아주시면 그런 식으로 변신을 할 수는 있겠죠. 그런 기회가 좋은 거 같아요.”
/서경스타 한해선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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